빚 생겨도 갚을 여력 없는 '구조적 문제'… 저신용·저소득·고이율에 침체된 지역경제까지
대구에 사는 김모(30) 씨는 2년 전 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12년 전문대를 졸업한 김 씨는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내고 채무 불이행자로 전락하자 석유류 제품을 제조·유통하는 업체를 차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온 가족이 매달렸던 사업체는 연 매출 10억원을 내는 등 안정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는 한순간에 찾아왔다. 제품을 공급한 업체들로부터 받지 못한 결제 대금이 2, 3개월 밀리다 보니 어느새 빚이 눈덩이처럼 쌓였다. 사채까지 끌어 썼지만 1억원에 달한 빚을 갚을 여력이 없었고, 채권 추심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법원을 찾았다.
경비용역업체에서 시간제 근로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 씨는 "살면서 누구나 어려운 시기가 올 수 있지만 갑자기 벼랑 끝으로 내몰리니 삶에 희망이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
대구 청년들이 빚에 짓눌리는 배경에는 갚을 여력조차 만들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데다, 임금 수준이 낮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 등 '질 낮은 일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이 적다 보니 고율의 이자를 부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빚을 갚으려고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에 갇히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빚의 굴레가 파산으로…악순환에 빠진 청년들
소득 수준이 낮은 20대들은 갑작스러운 일이 닥쳤을 때 빚을 빚으로 해결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대구청년유니온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00명 중에 생활비 외에 조금이나마 여윳돈이 있다는 비율은 42.7%로 절반에 못 미쳤다. 저축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도 절반을 조금 넘는 57.3%에 그쳤다. 반면 과도한 빚으로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다는 응답자가 71.4%에 달하는 등 대구 청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부채 상환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상대적으로 신용이 낮은 청년들이 고이율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설문조사에서 청년들이 안고 있는 대출은 한국장학재단 등 국가보증대출이 44.5%(183건)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한국장학재단을 제외할 경우 117명이 시중은행을, 122명은 제2, 3금융권을 이용하고 있었다. 2, 3금융권 대출 중에서는 이자가 비싼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가 47.5%로 가장 높았다.
특히 대구 청년들은 월평균 이자로 16만원을 내고 있는데, 이를 평균 부채금액인 2천603만원에 단순 대입하면 연이율 7.3%라는 계산이 나온다.
부모가 남긴 1억여원의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박모(31) 씨도 비슷한 상황이다. 박 씨는 정부 서민금융 지원제도인 햇살론을 통해 연 7~8% 금리로 생활자금 4천여만원을 대출받았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대구 한 구두공장에서 일하면서 월급 250만원 중 180만원을 대출금 상환에 쏟아부었다. 남은 70만원으로 늘 빠듯하게 생활했지만 아직도 6천만원의 빚이 남아 있다. 박 씨는 "지난 4년간 착실히 갚아왔지만 연봉이 낮다 보니 시중은행 대출은 꿈도 못 꾸는 게 현실"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최유리 대구청년빚쟁이네트워크 상임대표는 "대출 연체 경험이 있는 청년 10명 중 3명은 무리한 채권 추심 연락으로 일을 하는 데 지장을 받는다고 호소했다. 청년 부채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했다.

◆어두운 지역 경제 청년들 숨통 조여
침체된 지역 경제가 부채를 짊어진 청년들의 숨통을 조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경제의 축인 섬유와 기계, 자동차 부품 등 주력 산업이 대부분 성숙기 혹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일자리가 줄고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지난달 8일 발표한 '대구지역 청년인구 유출 배경 및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 2008년 대구의 상용 근로자 고용률은 19%로 수도권 평균 24%와 5%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대구가 24%, 수도권 평균이 32%로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생 끝에 취업해도 임금 수준이 낮고 근로시간이 긴 현실도 대구 청년들을 압박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월 임금 평균은 250만원 수준으로 수도권(300만원)보다 50만원이나 적었다. 반면 월평균 근로시간은 대구가 180여 시간으로 수도권 근로자보다 10시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가뭄이 계속되다 보니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지역 청년 유출 인구는 2011년 3천333명에서 지난해 4천561명으로 무려 36.8%나 급증했다. 달서구 성서공단에서 근무하다 서울로 이직한 이모(31) 씨는 "4년 전 육군 중사로 전역했는데, 대구에선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막상 취업을 해도 일한 만큼 돈을 받을 수 없는 것이 대구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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