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①다리미

입력 2018-09-04 05:00:00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달빛이 환하게 밝았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어머니와 나는 마주보고 앉았다. 다림질을 해야 하는데 일손이 없어서 붙잡힌 터였다. 작은 옷가지는 혼자서도 다릴 수 있지만, 이불 호청 같은 큰 것은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림질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벌건 숯불이 담긴 다리미를 잡고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구김살을 펴나갔다. 다리미가 내 앉은 쪽으로 다가오면 불기운이 치밀어서 화끈거렸다. 어머니는 심심한지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흥얼흥얼 하셨다. 아마 노래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요즈음으로 비유하자면, 젊은 사람들이 스노보드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랩을 흥얼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되겠다.

한참을 그렇게 붙잡혀 있었다. 어린 나로서는 지겹고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손을 놓고 말았다. 순간, 어머니가 일어나더니 다림질하던 옷감을 훌훌 털어내고는 이리저리 살펴보셨다. 자칫했으면 다림질감을 태울 뻔 했다며 쯧 쯧 쯧 하고 나무라셨다. 그때 내 나이가 여남은 살쯤 되었을 성싶다.

그 시절, 집집마다 조선 다리미 하나쯤은 간수하고 있었다. 의복의 구김살을 펴고 주름을 잡는 데 쓰이는 생활 기구가 다리미다. 주철로 만든 것인데 둥그렇게 생겼다. 바닥은 매끄럽고, 숯불을 담는 데는 오목하다. 바라진 아가리의 지름은 약 20센티미터 정도, 밑 부분의 직경은 10~20센티미터 정도이다. 거기다 한 뼘 조금 넘는 나무로 된 손잡이를 박아서 쥐도록 되어 있고, 그 끝에는 작은 고리가 달려 있다. 그와 함께 다리미를 올려놓는 다리미 받침도 있다.

다리미질을 하려면 우선 숯이 필요하다. 불을 피워서 숯을 벌겋게 달구어 대접처럼 생긴 다리미 안에 담는다. 또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다림질감을 잡아당겨야 하고, 다리미를 밀었다 당겼다 하며 문질러서 다린다. 조선 다리미는 구조상 다림질을 하다가 쏟거나 뒤집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불똥이 떨어지기도, 재가 쏟아지기도 해서 옷감을 태우거나 버리게 된다. 잡아주는 사람이 조심을 해야 된다.

시인은 여름밤의 운치를 이렇게 읊조렸다. '달 아래 호박꽃이 환한 저녁이면, 군색스럽지 않아도 좋은 넓은 마당에는 모깃불이 피워지고, 그 옆에는 멍석이 깔려지고, 여름살이 다림질이 한창 벌어진다. 멍석자리에 앉아 보면 시누이와 올케도 정다울 수 있고, 큰아기에게 다림질을 붙잡히며, 지긋한 나이의 어머니는 별처럼 먼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함지박에는 갓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오란 강냉이가 담겨 나오는 법이겠다. 여름밤은 차츰 깊어지고.' 노천명이 쓴 「여름밤」의 한 구절이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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