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구시의원입니다] 9) 김동식(더불어민주당·수성구 제2선거구)

입력 2018-09-03 14:17:13 수정 2018-09-03 14:23:35

대구시의원. 아는 사람만 압니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은 알아도 또 다른 우리 동네 대변자인 시의원은 잘 모릅니다. 이제 그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관심이 우리 구(區)·군(郡) 나아가 우리 대구를 잘 돌아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매일신문은 이번 6·13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의원들의 인터뷰를 싣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동네 시의원의 참모습을 확인해보세요.

[나는 대구시의원입니다] 김동식 대구시의원

득표율 50.06%, 86표 차. 살얼음을 걷는 승부였고 간발의 차이였다. 만약 투표자 44명이 마음을 바꿔먹었으면 낙선의 쓴맛을 봐야 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김동식 대구시의원(52'더불어민주당)은 개표 당시 담담했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1표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기에 자신의 의정 활동에 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한다. '리틀 김부겸'이 아니라 '정치인 김동식'이 되겠다는 그의 포부에 무언가 해내겠다는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상대 후보에게 86표 차이로 당선됐는데 당시 심정이 궁금하다.

▶솔직히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개표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상대가 3선의 오철환 후보여서 만만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3% 이상 이기고 있었다. 4년 전 무소속의 시민 후보로 도전해서 실패한 이후 정말 열심히 뛰어왔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이 상태로만 열심히 하면 이긴다는 자신이 있었다. 개표할 때도 엎치락뒤치락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당선됐을 때 십 년 감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표 차이가 별로 나지 않다 보니 마지막 선거 직전 48시간 유세를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나름 분석도 해봤다. 사실 24시간까지는 어느 정도 유세를 하겠던데 그 이상은 너무 힘들더라. 사람 중에는 새벽 3~4시까지 유세를 하니까 웃는 이들도 있었고 "꼭 찍을게요"라며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 선거유세를 안 했더라면 떨어졌을 수도 있다. 부인은 울다가 웃다를 몇 차례 했다고 토로하더라. 이번 결과가 1표의 소중함을 새삼 가르쳐줬다. 앞으로 저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

-대구참여연대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는데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대학 다닐 때부터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개혁이나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1993년 대학 졸업 후, 고향인 경북 성주에 있는 농협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농민들과 함께 시위를 많이 했다. 농협은 1년 정도 다니다 직업에 대한 회의 등으로 그만두고 성주에서 조그만 시민단체를 결성해 활동했다. 시민운동이 정당 운동을 다변화시키는 제3물결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그러다 1997년 결혼을 했는데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 사생활이 별로 없어 부인과 계속 마찰이 생겨 시민단체 활동을 잠시 접고 대구에서 사업했다. 그러는 와중인 1998년 대구참여연대를 결성하자는 제의가 있었고 항상 시민운동에 대한 열망이 있던 차여서 같은 해 4월 참여연대가 창립될 때 창립회원으로 합류하게 됐다.

-시민단체 활동 중에 특히 도시공동체 활성화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하는데.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모두 익명화가 됐는데 이런 상황이 도시범죄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제가 시골에 살 때는 아이 누가 울면 어른들이 부모가 누군지, 어느 집 아이인지 물어봤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잘 없는데다 누구 집 아이라고 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공동체 의식을 잊어버리는 게 도시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도시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는 도시의 건강성을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차원에서 수성구 시지에 터를 잡고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 활성화에 매진해서 어느 정도 도시공동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문제는 아파트다. 우리나라 도시는 아파트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아파트가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데 외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하지만 아파트 문화에서는 공동체 문화가 많이 약하고 이에 대한 연구도 미흡하다. 상당수 아파트 주민은 외지 사람이 방문하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외지 사람이 주차하는 것도 싫어하는 등 폐쇄성이 강하다. 아파트 상가 고객을 위해 낮에 주차공간이 있으면 개방하면 되지만 온종일 주차 금지를 하고 있다. 아파트 인근 소공원의 수풀에 벌레를 잡으려고 구청에서 방역하면 아파트는 방역이 안 되니까 못 한다. 그러면 벌레가 아파트로 다 넘어간다. 아파트의 폐쇄성이 결국 아파트로 피해가 가는 것이다. 아파트 문화가 개방돼야 한다. 주변의 빌라와 단독주택과의 화합도 필요하다. 공공기관도 아파트 내 시설을 담당 시설로 인지해야 예산 투입이나 관리 등이 가능하다.

-15년간 대구참여연대에 몸을 담다 제도권 정치로 들어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대구참여연대에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시민운동을 제도권으로 넓혀보자는 취지에서 무소속의 시민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낙마는 했지만 무소속인데도 36%의 지지율을 얻은 성과가 있었다. 같은 해 12월쯤 당시 수성구 국회의원을 도전하던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캠프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스스로 대구의 1당 독점을 타파하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김부겸 캠프 조직본부장을 맡았다. 2016년 총선에서 이기고 지역 사무국장을 거쳐 김 장관(당시 국회의원) 보좌관까지 맡았다.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면서 크게 느낀 부분이 있었다. 시민운동은 문제를 제기만 하면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보지만 제도권 정치에서는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역할이다. 예를 들어 시민단체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같이 울어주거나 같이 목소리를 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과거 황산테러사건 부모가 한창 재조사를 요구할 때도 시민단체에서는 같이 외쳐주는 일밖에 못 했다. 제도권 안에 있으면 사회적 약자나 소수라는 이유로 억압이나 불이익을 받으면 같이 해결해줄 수 있다. 그게 가장 큰 보람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 영역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김동식 시의원
김동식 시의원

-인생에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들었는데?

▶대구참여연대는 비상근직이다. 시민단체 활동으로는 밥벌이가 안 된다. 1997년 결혼 후 대구로 온 뒤 조그마한 웨딩가게를 했다. 하지만 IMF 이후인 2000년 초반에 너무 경기가 좋지 않아 폐업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 당장 갈 때도 없고 먹고사는 일이 막막해 막노동판에서 일했다. 당시 일당이 5만원 정도였다. 막노동에 얻은 경험으로 설비배관공으로 10년 가까이 전국을 떠돌면서 살았다. 이후 2012년쯤 인테리어 가게를 제 이름으로 개업했다. 그런 과정에서 정말 죽고 싶다는 상황도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보다 어려운 시기가 앞으로 올지 생각된다. 정말 제가 오랫동안 몸소 겪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리틀 김부겸'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선거운동하면서 김 장관과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다. 집안 동생이냐는 물음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지역구가 김 장관의 지역구이고 밑에서 보좌관 생활을 했으니 그런 별칭이 붙은 것 같다. 사실 김 장관과 추구하고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긴 하다. 그러나 소위 '가신'(家臣)은 절대 아니다.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지지자일 뿐이다. 정치적인 꿈이 같을 뿐 상하관계는 아니다. 어찌 보면 김 장관처럼 훌륭한 정치인이 되라는 의미에서 붙은 별칭인 것 같다. 솔직히 리틀 김부겸이라는 별칭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제 나름의 정치관과 소명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의정활동을 잘 펼쳐 '정치인 김동식'으로 불리고 싶다.

-교육 복지 공약 중 진로진학지원센터 개설이 눈에 띈다.

▶중'고교에 진학센터가 많지만, 지금까지 별로 효과를 못 내는 것 같다. 수성구는 서울의 강남 다음으로 학구열 높은 지역인데 진로진학지원센터가 없다. 그렇다 보니 일부 학부모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까지 올라가서 고액의 입시진로진학 상담을 받고 온다. 물론 부유한 학부모는 이를 감당할 수 있지만 문제는 맞벌이하는 학부모들이다. 자녀의 진로진학에 관심은 많지만 바쁘고 경제적인 부담 탓에 제대로 컨설팅을 해주지 못한다. 부모가 입시제도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무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성구 내에 진로진학지원센터를 만들고 서울 강남 수준의 지원관들을 상시 배치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 중이다. 수성구청과도 큰 맥락에서는 합의됐다. 이렇게 되면 센터 예약을 통해 언제든지 학부모나 학생들이 입시제도의 전반적인 상황이나 변화 등을 상담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공약은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다.

-어떤 시의원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시의원 자리가 대구 시민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지만 민주당 소속의 시의원의 역할도 있어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역할이 있으면 대구 시민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이후 민주당 지지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나는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민할 것이다. 인기있는 시의원보다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시의원이 되고 싶다. 자리에 상관없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는 시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다.

김동식 시의원 프로필
김동식 시의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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