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회계 개혁법안, 잘못됐다

입력 2018-08-29 11:10:20 수정 2018-08-29 19: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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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복 대구지방공인회계사 회장

이진복 대구지방공인회계사 회장
이진복 대구지방공인회계사 회장

최근 금융위원회가 입법 예고한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의 시행을 앞두고 지방 회계사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8월 1일 발표된 개정안에 따르면, 상장법인 감사인이 되려면 40인 이상의 회계사가 주사무소에 상시 근무하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지방 분사무소에 근무하는 회계법인 회계사는 감사인 지정점수 산정에서 제외된다.

정부의 이번 개정안은 여러 문제점이 있다. 첫째, 현재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 본사를 둔 회계법인 가운데 주사무소에 40명 이상 상주하는 회계법인은 단 한 군데도 없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구경북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상장법인은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서울에 있는 대형회계법인에게 감사받게 된다. 상장법인 감사인 요건에서 지방 회계사를 제외하는 이번 개정안은 전문적 지식과 경험은 괄호로 묶고 지방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기회 박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둘째, 개정안에서는 감사인 배정 제도에 사용되는 감사인 점수를 산정할 때 주사무소 회계사만 포함하고 지방에 많이 소재하고 있는 분사무소 회계사는 제외하고 있다. 지방을 빼고 서울의 회계법인에만 업무 배정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개정안대로라면 지방 분사무소에 근무하는 20년 경력 회계사는 0점, 서울 대형회계법인의 1년 경력 회계사는 80점의 배정 점수를 받는다. 정부가 나서서 지방 회계사의 몫을 빼앗아 서울 회계사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형국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지방 회계사들은 결국 상장법인 감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역량을 모두 상실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지방에서 근무하려는 수습회계사들의 일자리는 박탈당하고, 지방의 회계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다.

셋째, 개정안은 지방 회계사가 회계개혁법안에 참여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최근 회계법인 대형화를 위한 분할합병을 주된 골자로 하는 공인회계사법 개정이 회계제도개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지방의 회계사들도 적극적으로 합병 등을 통하여 규모를 대형화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상장법인 감사인 등록 요건에도 제외되고 감사인 지정 점수 산정에도 제외되는 지방 회계사들이 합병 대상으로 환영받을 수 없게 되었다. 회계개혁법안 참여는 사실상 막혀 있다. 회계개혁법안 논의의 시발점을 제공한 대우그룹과 최근 논란이 된 삼성바이오와 같은 회사의 회계감사는 줄곧 'Big 4'라 불리는 대형회계법인이 맡아왔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부실감사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이들에게 보약처방과 일감 몰아주기로 향해 있다. 반대로 지금까지 공정하고 성실하게 회계감사를 수행해온 지방의 대부분 회계사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게 되었다.

공정한 회계감사를 통한 회계투명성 제고와 신뢰사회 구축은 특정 주체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제이다. 서울과 지방의 회계사들이 각각 역할에 맞는 자리매김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의롭고 공정한 시스템이 확보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상장법인 감사인 등록요건과 감사인 지정점수를 정하는 인력 기준을 현재와 같이 소속 공인회계사 수로 유지하고, 등록요건 감사인 수를 대폭 하향해 주기를 정부당국에 강력하게 건의한다. 건강한 민주시민사회에서는 다양성 자체가 바로 선(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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