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사실과 진실

입력 2018-08-26 14:37:31 수정 2018-08-26 18:39:05

대구능인고 교사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얼마 전에 50대인 아는 형님, 누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인즉 현재 우리나라에 쌀값이 30% 이상 폭등을 하고, 쌀 창고마다 텅텅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북한에 퍼 주고 있어서 남한에 쌀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전적 의미로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고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실 중에 거짓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만 따지면 사실에는 거짓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사실들 간의 관계를 규명하거나 사실을 해석할 때는 참과 거짓 즉,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현재 쌀값이 30% 이상 폭등한 것은 실제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실이다. 그런데 '쌀값이 30% 폭등했다'라고 했을 때 얼마를 기준으로 해서 30%라는 말은 없다. 사람들은 당연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쌀값, 즉 산지 기준으로 한 가마니 18만원 내외를 기준으로 폭등했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말을 접한다. 하지만 현재 쌀값은 18만원에서 30% 오른 23만원 정도 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 2년간 폭락을 했었던 것이 17만원대를 회복한 것일 뿐이다. 어떤 사실을 이야기할 때 30%라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 매우 신뢰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보지 못하고 특정 시점이나 부분만 떼어 내서 보면 진실을 왜곡하기 쉬운 것이 바로 숫자의 함정이다.

쌀값이 급격하게 상승하자 정부에서는 비축미를 방출했다. 방출을 할 때 모든 미곡 창고에서 같은 비율로 방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미곡 창고는 비었다고 할 만큼 재고량이 적을 수 있다. 창고가 비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말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을 할 때 '텅텅'이라는 말을 써서 과장을 한 것이다. 이러한 과장은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는 있지만 객관적인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쌀 창고마다'라고 표현한 것도 몇 개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시키는 논리적 오류를 담고 있는 것이다. 빈 쌀 창고를 본 사람이 전국의 쌀 창고 상태를 모두 본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샘플을 조사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이 전부라고 믿는 경향 때문에 그런 표현을 하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사실에만 집착할 때 진실은 더 멀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