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차장 이창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보수 혁신을 주도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김 위원장 취임은 현실 정치에서 보수 가치의 완전한 몰락을 상징한다. 박근혜 정부의 붕괴가 보수 정치의 몰락을 상징했다면 '원조 친노'인 김 위원장의 취임은 한국당이 추구해 온 보수 가치의 청산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이 누구인가.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인 행정도시 건설, 공공기관 이전, 부동산 정책, 전자정부 등의 입안 단계부터 집행과 점검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참여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 감사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 고위직 인사가 있을 때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고,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냈다. '원조 친노'이자 참여정부의 보기 드문 '정책통'이었다.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그를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모욕했다. 교육부총리 재직 당시 숱하게 인간적 모멸감을 안겼고, 이명박 정부는 심혈을 기울였던 종합부동산세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그랬던 한국당이 보수 혁신의 키를 그에게 맡겼다.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문재인 정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한국당이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속설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 프레임에 가둬 일격을 가했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하향 곡선을 그렸다. 정치는 말싸움이다. 적확한 언어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은 전쟁에서 포탄 수백 발을 명중시키는 것만큼이나 짜릿하다.
취임 한 달이 지나면서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갈 길이 멀다. 그는 당내 갈등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면서 정부 여당에 정책적 대립각을 세워 제1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당 지지율이 20% 안팎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도 드러냈다. 인적 청산 등 화끈한 변화를 보이는 게 지지율 상승의 지름길이지만 당내 기반이 전무한 상황에서 자칫 분란만 자초할 수 있다. 결국 보수 가치 재정립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다. 반공과 친기업, 기득권 옹호에 기대온 한국당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내로라하는 정책통인 김 위원장에게 기대를 걸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 공화당은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사임하면서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도덕성 위기에 처하며 "보수와 공화당은 끝났다"는 자조가 흘렀다.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공화당은 포기하지 않았다. 위기 모면을 위한 반대가 아니라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정교한 반박, 보수 세력의 체계적 규합에 나섰다.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도 만들었다. 헤리티지재단은 복지 비용 삭감, 국방비 증액 등을 근간으로 하는 부국강병 노선을 개발했다. 보수 진영은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 모임을 조직하도록 지원하는 등 영역을 넓혀갔다. 보수 진영이 내놓은 각종 정책은 '진보는 이상론을 외치지만 보수는 현실적 이슈를 선점한다'는 이미지를 굳히도록 했다. 공화당은 끝내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탄생시켰고, 레이거노믹스는 미국을 초강대국 자리에 올려놓았다.
한국당은 김 위원장을 이이제이(以夷制夷)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면의 타개책으로 친노였던 김 위원장을 활용하겠다는 얄팍한 꾀로서는 절대 보수 혁신에 성공할 수 없다. 2012년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정강 정책에서 보수를 빼자'고 했다가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한국당 구성원들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스로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면 누가 운전대를 잡더라도 결국은 도로 아미타불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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