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빈의 시와 함께] 매미사랑 박방희(1946~ )

입력 2018-08-21 16:09:07 수정 2018-08-22 19:12:00

장하빈 시인
장하빈 시인

나무에 눌러 붙어 매미가 운다
귀 막고 눈 막고 푸를 뿐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떼쓰는 아이처럼
매미는 더욱 시끄럽게 운다
매미 울음 뜨겁고 애절해
마침내 빗장 풀어 가슴 연 나무
매미 소리 안아 들인다
이제 여름내 우는 건 나무이다
나무의 푸른 울음뿐이다
어쩔 것인가, 가령
한 계집이 한 사내에 와서
저토록 절절하게 울어 쌓는다면
돌 같은 그 사내 팔 벌리고 가슴 열어
마주 안아 울지 않고 어쩌랴!
그로 인해 단풍 들고 낙엽 져
겨울이 온다한들 어쩌랴!


―시집 『복사꽃과 잠자다』 (지혜, 2016)

창밖에 매미 울음이 아직도 식을 줄 모른다. 매미가 땅속에서 수년 동안 유충으로 지내다 세상 밖으로 나와 숲을 흔들며 울어대는 이유는 짝짓기 위해서라고 한다. 수컷 매미는 암컷을 가까이 유인하기 위해 배에 있는 발음판을 진동시켜 울음소리를 낸다. 바로 애끊는 구애의 울음이다. 매미는 한여름 한 달가량 뜨거운 사랑을 나눈 뒤 생을 마감한다.

"매미 울음 뜨겁고 애절해" 나무가 "귀 막고 눈 막고" 한들, 그 구애를 뿌리칠 수 있으랴? 여름과 함께 매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매미소리 그리워 우는 건 나무이리라. 매미와 나무의 사랑법이다. 남녀의 사랑도 매한가지라. 한 계집이 한 사내에게 매미처럼 눌어붙어 "저토록 절절하게 울어 쌓는다면" 목석같은 사내인들 "빗장 풀어 가슴 열어" 그 울음에 공명하지 않고 어쩌겠는가? 사랑에 빠져 남은 생이 붉게 물들거나 타오른들, 된서리 맞거나 나락으로 떨어진들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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