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인권변호사 일이 많아져 이곳저곳 출장을 가야 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 모든 일을 함께했다. 나는 돈 버는 일을 전폐했지만 그는 사무실 운영을 도맡아 하면서 매월 내게 생활비를 주었다. 부산에서 선거를 치를 때마다 있는 힘을 다했고, 대통령 선거 때는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아 주었다. …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 친구 노무현'이라고 한 것은 그저 해 본 소리가 아니다. 나이는 나보다 젊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친구로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관계다. 나이로 7살의 차이가 있었지만,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렇더라도, 둘의 성격 차이는 뚜렷했다. 노 전 대통령은 카리스마 넘치고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단점이라면 언제나 남을 설득하려 들었고, 성급하고 까탈스러운 일면이 있었다. '돈키호테' 기질도 엿보였다. 문 대통령은 순후담백(淳厚淡白)하고 남을 배려하는 인간미가 돋보인다. 문 대통령을 잘 아는 이들은 리더십과 판단력에는 의문을 표시한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서로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었기에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 대통령이 위기를 맞고 있다. 최악의 경기지표와 고용 쇼크, 최저임금 문제로 정권이 휘청거릴 정도다. 청와대는 예산을 푸는 것 말고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니 일이 더 꼬여간다. '실력이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더는 남북관계나 적폐청산으로 국민의 욕구를 채워주기 어려워졌다. 평양 정상회담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 경험한 바가 있어 새롭지 않고, 적폐청산은 슬슬 피로감이 몰려온다.
어쩌면, 위기 상황은 자신의 능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른다. 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고, 국민은 그렇게 하길 원한다. 문 대통령의 부드러운 성격을 보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또다시 '공론화위원회' 비슷한 것을 만들어 갑론을박에 시간을 보내고 명확한 결론조차 내지 못할까 우려한다. 시민단체·노동계 등 자신의 지지층에 반하는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을 지도 의문스럽다.
노 전 대통령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상당히 이념적인 인물이었지만,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다.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건설, 이라크 파병 등 진보 세력이 반대하는 사업을 스스럼없이 해치웠다. 공기업 지방 이전으로 대구 신서혁신도시, 경북 김천혁신도시를 만든 것도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임기 말년에 좌·우 협공을 받아 극심한 지지율 하락을 맛보긴 했지만, 실용적인 대통령이었음은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시민단체노동계는 물론이고 '문빠' 반응까지 의식하는 듯했다. 아직까지 뚜렷한 업적이 보이지 않은 것은 여전히 자기편, 남의 편을 가리는 성향 때문일 것이다. 개혁을 하려면 피아를 가려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노동계 등도 기득권 세력일 수 있다. 우군마저 '배신'할 수 있는 결단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가 참담해진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이념진영 논리는 개나 줘버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래야만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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