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답 없는 대입 제도

입력 2018-08-23 05:00:00

김수용 사회부장
김수용 사회부장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 지인이 고가의 자동차를 구입했다. 고급답게 옵션도 수백 가지란다. 심지어 핸들의 가죽 종류와 색상, 가죽 꿰매는 실 종류까지도 지정할 수 있단다. 어떤 옵션을 택했는지 꼼꼼히 물어주었다. 그러자 지인은 이렇게 답했다. "그냥 잘 나가는 모델로 주문했어. 고르는 것도 한두 개라야 즐겁지. 하다 보니 골치 아파서."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됐다. 어쨌든 시끌벅적하던 사안의 결론이 내려졌으니 일단락인 셈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일의 한 단계가 끝났을 뿐 종국의 결과를 도출한 것은 아니다. 물론 대한민국 입시제도에 마지막 결론이란 게 과연 있을지조차 의문이지만. 정작 입시제도를 논하면서 학생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집단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바뀐 정권의 교육부는 지난해 입시제도 개편을 얘기했고, 잔뜩 기대하던 학부모들에게 1년간 유예라는 카드를 꺼내 들어서 한 차례 실망감을 주었다. 이후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회로 공을 넘겼고, 다시 국가교육회의를 거쳐서 교육부로 다시 돌아왔다.

정말이지 오랜 기간 고민과 숙려 끝에 내려진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교육부의 결정은 '권고'. 보다 단순하고 객관적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개편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1년 넘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대학 마음대로'다.

교육부는 수능 위주 전형, 즉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대학에 권고하기로 했다. 정부 재정 지원 등을 이유로 권고를 따라야만 하는 대학은 35곳인데, 이미 수능 비율을 30% 넘긴 대학이나 공학·예술·종교 등 특화대학을 제외하면 이마저도 20개 대학이 안 된다. 사실상 권고여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대학을 제재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른바 잘나가는 대학들은 대입 전형료 수입만으로도 건물을 지을 정도라는데, 정부의 재정 지원 카드가 먹힐 리 만무다.

애초에 대입제도 개편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너무도 복잡한 입시제도를 조금은 단순화해보자는 취지였다. 대학들이 입시의 주도권을 쥐고는 깜깜이 전형을 하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결과에 수긍할 수 있는 제도로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자기소개서 한 편 써주는데 수백만원을 받는 기형적인 입시 사교육 시장을 개선해보자는 것이었고, 학생부종합전형이든 논술이든 응시자가 왜 떨어졌는지 명확히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대학입시제도 개편 큰 그림은 '대입의 고급화'였나보다. 앞서 고급 차일수록 선택사양이 많아지듯이 수시와 정시에서 학생 선택권을 많이 주면 좋은 입시제도라고 교육 관계자들은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뜩이나 수시도 복잡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정시까지 고루고루 선택할 수 있도록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택권은 수험생이 아니라 대학이 쥐고 있다. 몇 년 뒤에 나올 입시요강에서 '우리 대학은 이런저런 과목을 좋아해'라고 발표하면 그걸로 끝이다. 결국 돌고돌아 대학 좋은 일만 시켰다. 그것도 수도권의 잘나가는 대학들만. 기대했던 국민들만 바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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