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 문화부장
'잡고 싶은 공만 잡는다.'
박민규의 야구 소재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던질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치기 어렵도록 던지는 게 아니라, 내키는 대로 던진다.
경기에 임하든, 응원을 하든 대다수 사람들은 우리 편이 이기기를 원한다. 이기려면 잡기 어려운 공을 잡아야 하고, 치기 힘든 공을 쳐야 한다.
어려운 공을 잡거나 치려면 평소 고된 훈련은 필수다. 당연한 말이지만, 훈련은 하고 싶을 때뿐만 아니라, 하기 싫을 때도 해야 한다. 작가 박민규는 그렇게 살지 말자고 말한다. 요컨대 이 작품은 치열한 경쟁과 승리만 추구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이성(理性)과 현실에 비판적이고, 수성(獸性)과 낭만에 우호적이다. 메시지는 이성적 판단에 대한 반성과 비판인 경우가 많다. 그 위치가 바로 문학이 설 자리이기 때문이다.
'영웅을 영웅으로, 도둑을 나쁜 놈으로 규정하는 이야기' 혹은 '도둑이 도둑질하는 이야기, 경찰이 도둑 잡는 이야기'는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 박민규가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 승리하는 이야기를 썼더라면(현실에서는 그 스토리가 타당하지만), 문학적 가치는 확 떨어졌을 것이다.
근래 우리 사회는 구성원 모두 작가가 된 듯하고, 모든 현안을 소설처럼 풀어내려고 작정한 듯하다. 언론은 여름마다 녹조라떼와 죽은 물고기를 애도하면서, 4대강 사업 덕분에 웬만한 가뭄에도 물 걱정 없이 농사짓는 이야기는 보도하지 않는다.
대규모 터널공사 때마다 '시대착오적 토목공사'라고 비판할 뿐, 터널 덕분에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그것이 민간 복지에 기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터널공사로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단식 농성까지 하면서, 심각한 교통 정체나 먼 거리 우회로 발생하는 자동차 매연과 환경오염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는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매국적 행위라고 난리를 치더니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최저임금을 덜컥 올려놓고는 고용이 줄고, 실업이 급증하자 세금으로 메운다.
원자력발전도 마찬가지다. 원전은 현재로는 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발전 수단이다. 환경오염과 위험이 예견 된다면, 보완책을 강구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대뜸 탈원전이 합리는 아닐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전력은 3분기 연속 적자에 2분기 적자만 6천871억원을 기록했다. 그렇게 현실을 무시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나 해대면서 스스로를 '고상한 존재'인 양 여긴다.
소설가 박민규는 '잡고 싶은 공만 잡는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이성을 비판하고 수성을 옹호해야' 하는 '문학적 요구'를 빈틈없이 충족시키고 있다. 겉으로는 생뚱맞은 소리나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마땅히 서야 할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몽상적 기질이 강한 소설가도 현실에 묵직하게 발을 딛고 소망을 노래한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정부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잡고 싶은 공만 잡자'고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니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잡고 싶은 공만 잡는 팀, 지기로 작정한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도 딱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패배'를 넘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소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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