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수 편집부국장
청와대의 경제 노선 투쟁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했던 '일자리 창출' 부탁을 잊었는지 청와대 참모들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에 대해 '투자고용 구걸'을 하는 것이냐며 딴죽을 걸었다.
김 부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이 '구걸'이라면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했던 부탁 역시 '구걸'인데 이는 청와대 실세들과 문 대통령 간 경제 노선을 두고 심각한 이견이 표출된 것이어서 보통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8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다 최근의 지지율은 58% 전후로 떨어졌다. 여론조사 회사별로 평균 20% 가까이 하락했다. 이를 국민 대비 단순 수치로 환원하면 약 800만 명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하락 요인은 바로 악화일로인 경제 때문이다.
해프닝 같은 사건 같아 보이지만 이번 '투자고용 구걸' 논란은 향후 문 정부의 공과(功過)를 가를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결국 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을 위해 좀 더 시장기업친화적으로 가느냐, 아니면 저소득층에 대한 분배 중심의 소득주도성장을 그대로 밀어붙이느냐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달리 말하자면 앞으로 문 대통령이 어떤 경제 브랜드로 마케팅할 것이냐로 귀결된다.
싱가포르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 리센룽 총리는 2005년 4월 의회를 찾았다. 카지노가 낀 복합리조트 개발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원들을 만나러 갔다. 그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카지노는 안 된다"고 한 아버지는 겨우 설득했지만 의원들은 '사행심을 조장하고, 전 국민의 도박중독 위험' 이 있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이에 리 총리는 "자신도 한때 카지노를 반대했다. 다른 글로벌 도시들에 뒤처지는 싱가포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카지노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카지노가 싱가포르 사회에 끼치는 마이너스 요인들을 열거한 뒤 이렇게 얘기했다.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지만 동시에 파리 같은 곤충과도 싸워야 한다. 곤충이 싫다고 문을 안 열 수는 없다." 싱가포르 경제를 일으킨 '신의 한 수'라고 평가받는 마리나베이샌즈(MBS)는 이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경제를 흔드는 이들은 국민과 기업이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 이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하는 얼치기 진보 좌파 이론가들과 시민단체이다. 문 대통령이 규제혁파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이를 대기업에 대한 특혜로 규정해온 일부 좌파들은 문 정부가 대기업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데 대해 불만을 쌓아 왔다. '투자 구걸' 주장은 이념적 선명성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집단적 불만이 투영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진정 리센룽 총리처럼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정권을 받치는 내부 파리들과 과감히 싸우고, 여의치 않을 경우 결별까지 감수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고용을 늘릴 수 있다면 경제부총리가 아니 대통령이 구걸을 한들 어떻고, 읍소를 한들 어느 국민이 싫어하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우군이었던 좌파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은 흔들어도 경제는 흔들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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