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노회찬의 진보정치

입력 2018-08-08 15:55:08 수정 2018-08-08 19:08:39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우리의 주적은 북한 아닌 미국'
사회주의 실현을 주장한 노회찬
전례 없는 국회장으로 추모해 줘
이 나라가 장차 어찌 되려는지?

지난 7월 하순 이 나라에서는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노회찬 씨의 죽음에 대한 추모 열풍이 휘몰아쳤다. 다분히 동원적이었던 노 의원 추모 열풍 속에서 그동안 운동권 정치세력들이 막연하게 말해 왔던 '진보정치'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치권과 매스컴은 사망한 노 의원을 '진보정치의 상징' '진보정치의 큰 별'이라고 지칭했다. 이는 노회찬의 정치활동이 곧 진보정치임을 말해준다.

노회찬은 정치는 자기의 신념과 철학을 실천하는 활동이라고 말해왔다. 노회찬의 정치활동이 진보정치의 표상이라면 운동권 정치세력이 자기들의 정치활동을 지칭하는 데 사용한 진보정치란 노회찬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전개했던 활동을 의미한다.

그가 실천하려고 노력해 온 신념과 철학은 무엇인가? 노회찬은 2004년에 발간된 정운영과의 대담록에서 자신을 "과학적 사회주의를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조직활동을 대규모로 벌이기 시작한 세대"의 일원이라고 털어놓으면서, 자기가 여전히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고백했다. 과학적 사회주의란 통상적 용어로는 공산주의에 해당되며,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은 공산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그는 같은 해에 발간된 평론집 '힘내라 진달래'에서 국회는 계급투쟁의 무대이며, 의회정치는 노동운동의 '대중투쟁과 의회투쟁의 병용'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노회찬의 오랜 동지 황광우는 노회찬을 "세계 무대에 자랑해도 좋은 정통 사회주의자이다. 그는 정녕 사회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실천했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고 평했다.

노회찬은 반미반남한의 신념을 가져왔다. 그는 우리나라의 안보에 대한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말했으며,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한미 FTA 폐지 등을 주장해 왔다. 노회찬의 주도로 2008년에 창당된 진보신당의 강령은 "한국 사회는 지옥이다" "인간을 착취와 억압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새로 세워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와 같은 변화를 노회찬은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노회찬은 북한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취해왔다. "북한은 지구 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국가'이다. 계획 경제와 배급제 등 스탈린주의 경제 운용 방식이 교과서에서 본 대로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일차적으로 북한 인민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노회찬이 1980년대 후반에 참여했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은 그들의 기관지에서 "우리들의 당면 목표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이고, 그것은 사회주의의 실현과 통일이라는 보다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주의와 통일의 실현"이라고 천명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궁극적으로 남한의 사회주의화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활동이 노회찬의 진보정치요, 운동권 정치세력의 진보정치인 것이다.

노회찬의 진보정치가 이러한 것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노회찬의 사망에 대해 비통하다고 애도하면서, "노 의원은 당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시대에 정치를 하면서 우리 한국 사회를 보다 진보적 사회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을 해왔다"고 높이 평가했다.

국회는 노회찬의 장례식을 전례 없는 국회장으로 거행하여 노회찬의 정치활동을 찬미했고, 정의당은 노회찬의 정신(곧, 신념과 철학)을 계승하여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에 이끌려 많은 수의 대중도 노회찬의 진보정치를 찬양하는 추모 대열에 덩달아 참가했다. 이 나라가 어찌 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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