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온천보호지구 지정 해제로
도산원탕으로 이름 바꿔 운영 이어가
가물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줄 알았다. 따뜻한 물이 내내 뿜어져 나오던 온천공이 닫히기 직전이다. 26년 3개월 넘게 이어오던 영업이 멈춰 섰다. 지지리도 구식이었던 시설들, 피부가 기억하던 매끄러움은 개별적 기억으로 남았다. 492㎡ 규모(가로, 세로 각 22m 남짓). 그마저도 남탕, 여탕으로 가르면 더 협소했던 간이온천탕, 도산온천이 문을 닫기 직전이다.
◆시한부 간이온천장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도산온천(온혜온천)의 폐업 소식이 들린 건 지난 달 31일. 마지막 손님을 받았다. 먼 옛날 사냥꾼에 쫓겨 상처 입은 멧돼지 한 마리가 잠시 쉬다 다시 줄행랑친 걸 봤다며, 산신이 기도에 응답해 점지한 곳이라 이러저러한 환자들이 특효를 봤다던 얘기가 전해내려오던 곳이다. 현대엔 등산객들이 봉화 청량산을 오른 뒤 내려오는 길에 '그렇다더라'며 근육통을 풀고 가던 곳이었다.
사실, 온천이라는 말이 민망했다. 겨울이면 두꺼운 외투와 내복 한 벌로도 옷장이 가득 차 목욕 가방은 구겨 넣어야 했던 옛날식 목욕탕이었다.

도산온천은 시작부터 한계가 있었다. 시한부였다. 대규모 온천단지 개발 계획 하에 정식 온천장이 건립될 때까지 만이었다. 간이온천장 허가만으로 버텨온 셈이다.
자연스레 시설 보수는 언감생심이었다. '20세기형 간이온천장'에서 '21세기형 사람들'이 "시설이 아쉽다"면서도 목욕을 했던 이유였다.
◆광대했던 개발 계획
간이온천장을 갖추고 1992년 개장했던 초기에는, 멧돼지도, 사연 많은 환자도 이 물에 나았다는 입소문 덕을 톡톡히 봤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하루 2천 명을 넘기는 날도 허다했다.
온천이어서 그랬을까. 요즘 말로 '핫(Hot)'했다. 개발 기대감에 1993년 외지인들이 가장 많은 땅을 사들인 지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2000년 안동시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놨다. 요즘으로 쳐도 투자자를 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민자를 유치해 35만평 규모의 면적으로 숙박시설, 종합쇼핑센터, 문화휴양시설 등을 설치하겠다는 방대한 계획이었다.
이곳저곳에서 투자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다가 여차저차 틀어졌고 차일피일 개발이 미뤄지다 결정적인 한 방이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서후면에서 온천(지금의 학가산온천)이 터진 것이었다. 하필 안동시 소유 부지였다. 대표 관광지인 하회마을과 봉정사 사이에서 발견돼 개발 효용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때부터 안동의 대표 온천은 학가산온천으로 바뀌었다.

◆희망고문 26년, 그리고 사망선고
반면 도산온천이 있던 온혜리 주민들의 불편은 커져갔다. 개발 계획이 미적미적 미뤄지길 20년여. 집을 새로 지을 수도 없었고, 도로 개설도 제한됐다. 심지어 지금껏 상수도도 개설되지 않은 터였다. 2016년부터 온천원보호지구 해제 요청 민원이 잇따랐다. 경상북도도, 안동시도 주민들의 불편이 이해되고도 남는다고 했다. 결국 올해 6월 28일 경상북도는 '도산 온천원보호지구 지정 해제'를 고시했다.
'온천원보호지구 지정 해제'란 지정 이전 상태로 원상 복구한다는 것이었다. 도산온천이 없던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도산온천이 덩달아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
도산온천 운영을 맡았던 대아실업은 이런 행정 절차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온천수이용권자의 의견을 무시한 일방적 행정인 만큼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민 민원은 온천을 폐쇄하라는 게 아닌데 모든 걸 원상 복구하라는 건 원칙에 집착한 행정이라는 주장이었다. 대아실업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온천공의 물이 마른 것도 아니다. 멀쩡한 기존 온천공을 닫고 새로 온천공을 뚫는 게 과연 합리적 행정이냐는 것이었다.
원상복구란 이미 뚫어둔, 온천수가 콸콸 나오는 온천공을 닫으라는 걸 의미한다. 영업을 재개 하려면 다시 온천공을 뚫어야 한다. 영업 허가도 다시 받아야 한다. 각종 행정 절차를 거쳐야한다. 대아실업은 이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2억 원 정도, 시간은 1년 정도를 예상했다.

◆주민들은 환영
20여년 동안 재산권 제한과 지역개발의 발목을 잡아왔던 '도산 온천보호지구'가 해제되자 주민들은 크게 반기고 있다. 안동 도산 온천보호지구(256만4천558㎡ 규모)는 지난 1989년 온천 발견과 1991년 온천지구 지정 고시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개발 없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안동시는 지난 2016년부터 개발계획 및 온천원보호지구 승인 취소를 위해 의견수렴과 간담회, 청문절차, 공청회 등을 거쳐 경북도로부터 지난 6월 말 온천원보호지구 지정 해제를 이끌어내고 지난 8일 행정처분을 위한 청문을 실시했다.
이 일대는 도산서원, 퇴계종택과 온계종택, 한국국학진흥원 등이 있어 한국 성리학의 본고장이면서, 안동선비순례길 조성과 최근 한창 추진되고 있는 3대 문화권 사업인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 등 유교문화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그동안 온천원보호지구 지정으로 지역 주민들은 건축물 개보수는 물론, 신축 등 건축허가를 얻지 못했고, 상수도시설 조차 못하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주민 권오순(73) 씨는 "온천 주변에 수백여년을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 30여 가구의 주민들은 사실상 아무런 개발행위를 못한 채 살아왔다"며 "이제 보호지구가 해제된 만큼 그동안 불편을 겪어왔던 주민들의 고통을 행정기관이 보살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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