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7>심사정 촉잔도권

입력 2018-08-02 11:16:02

심사정의
심사정의 '촉잔도권'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중국 남종문인화풍을 조선화시키는 데 성공하여 조선남종화의 대가로 불리는 선비화가다. 이 <촉잔도권>은 심사정이 그린 장대한 두루마리 산수화이다.

'촉잔(蜀棧)'은 '촉으로 가는 나무다리 길'이라는 뜻이다. 촉은 지금의 중국 사천성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옛날부터 길이 험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풍광이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해서 당나라 황제 현종은 피란길에 보았던 그 아름다운 풍광을 잊지 못해 난리가 끝난 후 화가들에게 그림으로 그려 오도록 하기도 했다.

심사정은 촉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수많은 바위산들과 이어졌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길로 표현했다. 워낙 길게 이어지는 여정이기 때문에 심사정은 곳곳에 다양한 요소들을 추가했는데, 이것은 마치 수많은 굴곡들로 점철되었던 심사정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숨 막힐 듯 이어지던 험준한 산과 깊은 계곡들의 신비로운 조화는 드넓은 강물이 나타나며 숨을 고르듯 마무리된다.

8미터가 넘는 장대한 그림의 마지막 부분에 "무자년 가을에 이당의 촉잔을 모방한다."라는 심사정의 글이 남아 있다. 무자년은 심사정의 나이 62세 되던 1768년으로 심사정은 이 그림을 그린 다음해 봄에 숨을 거두었으니, 이 작품은 심사정이 일생 동안 쌓아왔던 모든 역량을 남김없이 쏟아부은 절명작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당시 돈으로 서울의 큰 기와집 다섯 채를 살 수 있었던 거금 5천원을 들여 구입했다. 그런데 구입 당시 작품의 보존 상태가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매우 열악했다. 이에 간송 선생은 보존 처리를 위해 일본 교토에 작품을 보냈는데, 수리에 들어간 비용이 자그마치 6천원이었다. 예술품의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는 지금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지키려는 간송 선생의 애정과 의지가 아니었다면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르는 소중한 작품이다.

오세현(간송미술문화재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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