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 존재하는 국가와 국가, 문화권과 문화권 사이에 시공간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타자화'로 요약할 수 있다.
서양의 역사가 타자에 대한 원초적 거부반응의 시간이라면, 동양 역시 존왕양이(尊王攘夷·임금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침)와 위정척사(衛政斥邪·성리학 이외 모든 종교와 사상을 배척함)의 사고가 뿌리 깊었다. 그 대표적 예로 나와 우리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거리감을 뜻하는 이 같은 '타자화'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 발현과 식민지 개척의 시대를 초래했다.
이제 인식의 범위를 좁혀보자. 반도국가로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전통적으로 문(文)을 숭상해온 한국과 대륙과 동떨어져 험한 섬나라에서 칼과 무력을 받들어온 일본의 정체성 또한 여실한 차이가 있다.
이 책은 2014년 지은이가 낸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본의 특성을 하늘과 땅, 사람을 중심으로 지리생태학적 진화의 산물로 인식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天-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
일본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속담 중 하나가 "벼락이 네 배꼽을 노리고 있으니 배를 꽁꽁 감싸라"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일본 열도는 잘 알다시피 지진, 화산, 쓰나미에 매년 태풍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게다가 하늘은 수시로 벼락으로 열도를 강타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별로 없을 듯 싶다.
현재 최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일본이지만 아직껏 기독교나 불교보다 신도(神道)가 맹위를 떨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이승에서의 안녕이지 저승에서의 행복은 아니었다.
엄청난 자연재해와 극한의 공포는 8세기 초 고서기(古書記·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와 전설을 기록)에 나타난 만세일계의 천황 일족이 건국신화 속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의 직계 자손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 건국신화는 등장하는 신들의 수와 족보 등이 복잡다단하기로 이름나 있다. 이 가운데 신의 자손이 강림해 열도를 다스린다는 설정은 예측 불가한 자연재해 속에서 천황일족을 신성불가침의 대상으로 경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우리네 속담은 일본인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자연재해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아픈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地-꽃꽂이와 삼나무 그리고 해안선
'이케바나'로 불리는 일본의 꽃꽂이는 꽂아둔 꽃이 시들면 새 꽃으로 갈아줌으로써 꽃병 속 꽃은 계속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꽃 하나하나의 안위(?)보다 외양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꽃꽂이가 자연미에 무게를 둔다면 일본 이케바나는 인공미를 강조하고 있다. 왜? 불안한 현세에서 아름답지만 늘 꽃병이 살아있도록 강제해야하는 행위는 일본만의 특징인 셈이다.
일본 화엄종 본산이자 나라현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본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의 근간은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서 수령 3천여 년 이상 자라는 아름드리 삼나무에 있다. 기둥이 굵고 대들보가 커질수록 건물의 높이와 규모가 거대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정유재란이 끝나고 약 2년 후 1600년 10월 기후현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가 벌어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이 건곤일척의 전투를 벌였다. 18만여 명이 맞붙은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함으로써 에도막부 시대가 열린다.
7년간 조선과 전투에도 불구하고 불과 2년 만에 이 같은 대규모의 병사들이 전투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일본의 인구에 있다. 선사 이래 일본 인구는 언제나 한반도에 비해 수적 우위(2~4배)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엔 한국보다 4배나 인구가 많았다. 그 까닭은 해안선이 길수록 인구가 많아진다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人-벤토와 병영적 사회
우리나라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할 때 숟가락과 젓가락이 쉴새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이웃과 교감하는 열린 형식이다. 하지만 일본의 대표적 음식문화인 벤토는 혼자서 먹는 닫힌 형식이다. 그런데 이 벤토가 매끼마다 엄청난 수로 대량 소비된다. 라면, 우동, 덮밥, 카레도 벤토의 확장판에 불과하다.
또한 일본은 700년간 무사 정권이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움켜쥐어온 나라다. '금지'의 규범과 '복종'의 도덕률로 무력과 강압이 상부구조를 이루고 '순종'과 '침묵' '타율'과 '몰개성'이 자연스레 하부구조로 뒤따라온 나라이다. 이 때문에 자신이 이웃과 집단에 맞춰지도록 강제된 병영 같은 사회가 일본의 또 다른 이면이 된 것이다. 208쪽, 2만4천원
◇지은이 심훈 교수는 세계일보에 근무했고 미 텍사스 주립대서 언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림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부에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