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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텐바의 아침은 후지산과의 인사로 시작한다. 고텐바 시가지에서는 어디서나 후지산이 잘 보인다. 이른 아침 숙소의 창문을 여니 후지산이 쑥 들어왔다. 저곳 2천305m 오합목까지 자전거로 가야 한다니 단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이른 아침 후지산 방향으로 목적지를 삼아 힘차게 페달dmf qkfqsms다. 입구 초입에 '후지산-하코네-이즈국립공원'(富士箱根伊豆国立公園) 이라는 알림판이 선명하다. 쉼 없는 오르막이다. 길은 밋밋하니 참 재미가 없다. 난데없이 총소리, 포 소리가 들린다. 길옆을 살피니 '캠프 후지(Camp Fuji)' 표지판이 우뚝 서 있다. 미군 부대다. 때마침 사격 연습 중이었다. 이어지는 굉음 같은 포격소리에 산속의 낭만은 산산히 부서졌다.
지루한 오르막은 끝이 없어 보인다. 얼마를 달렸을까. 인적도 드물고 차도 잘 다니지 않는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드물게 지나가는 차들을 힘겹게 손짓해 세우고, 이 길이 맞는지를 물었다. 맞다고 했다. 그래도 이상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사람들이 잘 오르지 않는 '고텐바 루트(御殿場ルート)'였다. 한참 고민하다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오르기로 하였다. 이른바 후지산 고난의 등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약 10여km, 두 시간여 동안 힘겹게 올라온 오르막을 내려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맥이 탁 풀렸다. 잠시 꾀를 냈다. 후지산 언저리로 가는 버스를 생각해 냈다. 등산로 초입까지만 버스로 가기로 했다. 우리네 시내버스에 해당 하는 것이라 꽤나 승객들이 붐볐다. 첫 번째 버스는 퇴짜를 맞고, 그 다음 버스 기사분께 최대한의 불쌍한 표정을 짓고 사정을 했다. 앞바퀴를 분리하고 처연하게 앉아 후지산 등정을 위한 출발점인 휴게소까지 갔다. 시간은 점심시간을 지났다. 이미 몸과 마음은 지쳤다. '스바시리 루트(須走ルート)'는 오합목(五合目)까지 12km 정도였다. 뭐, 3시간 정도면 충분할 듯 했다. 중턱 언저리에 가면 뭐라도 있을 듯하여 생수 한 통만 챙겼다.
이게 큰 실수였다. 뙤약볕의 후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루한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오르막 강도가 급격하게 세진다. 소위 지그재그식의 스핀 오르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딱히 경치랄 것도 없어 머리를 아래로 처박고 계속 발길질이다. 쉴만한 포인트도 없다. 죽으라고 두 시간여 올랐는데 겨우 반을 올라왔다.
아이코! 경사는 점점 가팔라진다. 그 흔한 새소리도 드물다. 생수의 밑바닥은 이미 드러났는데 딱히 구할 곳도 없다. 요깃거리도 없다. 시간은 벌써 4시를 찍는다. '에라이' 하면서 벌렁 누웠다. 마침 지나가던 오토바이족이 멈추더니 괜찮냐고 묻는다. 그러곤, 엄지척을 해주고는 쏜살같이 사라진다. 아, 정말 울고 싶었다. 아직도 5km정도 남았다. 금방 닿을 듯한데 가파른 오르막이라 자전거를 끌기로 하였다. 라이더로서 소위 자전거를 끄는 '끌바'는 창피하고 자존심을 해치는 일이다. 체면이고 뭐고 없다. 가다, 서다, 타다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드디어 오합목 입구에 다다랐다. 시간은 6시를 넘는다. 꼬박 4시간여 만에 올라왔다. 눈물이 핑 돈다. 바람도 세차다. 20000m 위 고지대라 구름들이 발아래 걸쳐져 있다. 오합목 위 주차장에는 일몰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진사들이 제법 두툼한 옷들로 가리입고 있었다. 이미 말라버린 생수통을 몇 번이고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갑자기 센치한 느낌이 들어 후지산이 잘 내다보이는 모퉁이에 앉아, 구름 위 풍경을 내려본다. 오묘하다. 그러자 문득 한 가지 결심이 쑥 마음속으로 다가왔다. "느리더라도, 서툴러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니 이곳까지 온 것이다. 삶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라고. 엷은 일몰이 지는 후지산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소중한 영상을 선사한다.

안개가 몰려온다. 추위를 피하려 최대한 몸을 감싼 채 내리막의 향연을 즐길 시점이다. 시속 40km에 이르지만 위험을 느껴 천천히 내려간다. 이 넓디넓은 산중에 딱 나 혼자다. 완전한 소유다. 목이 터져라 소리도 지르고 외치듯 노래도 부른다.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후지산을 오롯이 혼자서 자유로이 소유하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을. 7시가 다 되어 출발했던 휴게소에 도착했다. 두 병이나 연속으로 물을 벌컥이고 오늘밤 머리를 뉘일 곳으로 가는 방도를 연구한다. 목적지인 카와구치 호수(河口湖)까지는 약 40km. 자전거로는 불가하다. 3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에 실어달라고 부탁을 하였지만 돌아오는 답은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다. 밤은 완전히 저물었다. 막 문을 닫으려는 휴게소에 가서 호출 택시번호를 받았다. 한곳에 전화를 하였다. 차가 없단다. 두 번째 회사도 무리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회사에 연결하니 딱 한 대가 가능하단다. 7천엔 택시비를 지불하고 한국에 관심 많다는 기사 아저씨와 내내 재잘대며 왔다. 한밤의 카와구치 호수는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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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 투어의 시작과 끝, 카와구치 호수(河口湖)
카와구치 호수는 후지산이 낳은 다섯 개의 호수 중 가장 잘 생겼다. 카와구치 호수에서는 어디서 보더라도 후지산이 잘 보인다. 한겨울 눈 덮인 후지산을 호수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은 한결 같이 이곳 작품이다. 사이코호(西湖), 야마나카호(山中湖) 등 다섯의 호수를 이어서 라이딩하는 것도 색다른 힐링이다. 워낙 포토존이 많아 슬렁슬렁 달리며 촬영하는 재미도 제법이다. 하필이면, 이날의 후지는 이마의 구름숲에 꽁꽁 숨겨져 그 민낯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그 잘생긴 놈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큰 부채라도 있다면 흔들어 그 구름들을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후지산을 천천히 느끼기 위해서는 카와구치 호수에서 시작하는게 정답이다. 나는 무슨 탐험가 된 듯이 반대편에서 시작하였지만 그건 사서 고생하는 꼴이다. 카와구치 호수에서 시작한다면 낭만과 스릴을 동시에 맛 볼 수 있다.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카와구치 호수에서 그 잘난 후지가 반사되는 호숫길 따라 라이딩하고 싶다. 호수 한 바퀴는 대략 1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야마나카 호수 등 인접 호수들을 함께 달려도 반나절이면 족하다. 혹여, 맨몸으로 간다면 하루 500엔 정도로 자전거를 렌탈 할 수도 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카와구치 호수에서 신주쿠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다국적 인파들이 한 가득이다. 안내하는 일본인들도 꽤나 영어가 능통하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인파가 부러웠다. 대구경북에도 이런 인파들이 물밀듯 찾아오는 날을 상상한다. 혹시라도 또 버스에 자전거를 못 실을까 걱정하여 맨 앞쪽에서 쏙하고 짐칸에 밀어 넣고 천연덕스럽게 도쿄행 버스에 탔다.
◆라이딩의 천국-홋카이도(北海道)
이제 힘들고 고단했던 후지산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약250km의 여정이었지만 '고생바가지'라고 채색될 듯하다. 가장 고생한 시간들이 남는다고 후지산을 숨 가쁘게 올랐던 추억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를 더하리라. 후지산이 주는 선명한 교훈은 더욱 생생해진다. '그냥 꾹 참고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결국에는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는 간명한 가르침이다.
이제 일본 일주 라이딩의 대미를 장식할 홋카이도가 기다린다. 라이딩의 천국, 홋카이도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잔뜩 기대가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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