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득의와 실의

입력 2018-08-01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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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도 기회를 놓쳐 더 큰 힘이 드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혼자 쓰는 호미와 일꾼 3명 이상 붙어야 온전히 제 기능을 하는 가래의 차이는 크다. 가래로 막는다면 그나마 다행인 게 또 세상사다.

속담 같은 일이 잇따라 터졌다. '반도체 기밀 공개'라는 초유의 사태를 부른 삼성전자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논란과 BMW 디젤엔진 연쇄 화재가 그런 예다. 전자는 인과관계나 시시비비를 떠나 기업이 도리를 먼저 생각하고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했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을 일이다. 후자도 화재를 유발하는 불량 부품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제때 조치하지 않고 뭉개다 화를 키운 경우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술 정보 공개라는 곤란한 사태에 직면한 것은 2007년 기흥공장 노동자 황유미 씨의 급성 백혈병 사망이 그 출발점이다. 유족과 회사 측의 '반도체 백혈병' 분쟁이 급기야 고용노동부와 법원으로 옮겨붙고, 올해 2월 대전고법이 "근로자 이름을 빼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하면서 정점으로 치달았다.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경직된 자세가 영업비밀 차원을 넘어 '국가 핵심 기술' 노출이라는 큰 위기를 부른 것이다. 결국 산업기술보호위원회와 행정심판위원회를 거쳐 겨우 '핵심 기술은 비공개' 결론이 났다.

BMW 사태는 글로벌 기업의 도덕성과 고객 서비스 개념이 구멍가게보다 못함을 재확인시킨 케이스다. 미국처럼 강제 리콜과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일탈 기업의 목을 바짝 죈다면 어떻게 나왔을까. 하지만 국내 환경이 나긋나긋하다 보니 BMW가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는데도 사과나 보상은 뒷전이고 땜질 처방만 난무한다.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데이터 조작 사태에서 보듯 BMW 사태도 기업의 고질적인 생리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체면과 작은 이득에 집착해 일을 그르치고 기업 신뢰마저 잃는 수순이다. 더욱 혀를 차게 하는 것은 가래로라도 막겠다는 생각을 가진 기업이 드물다는 점이다. 득의(得意) 때 실의(失意)가 난다는데 갈수록 '꾀하는 게 뭔지'(企業)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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