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소상공인, 이 땅의 내부 식민지

입력 2018-07-31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러시아혁명 뒤 볼셰비키는 조속히 산업화를 이뤄 서구 자본주의 국가를 따라잡고자 했다. 그러나 '자본'이 없었다. 서구와 단절돼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이런 난제의 해결 방안의 하나가 천재 경제학자로 불렸던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주장한 '내부 식민화'였다. 그 개념은 이렇다. '자본주의적 축적은 식민지 약탈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러시아는 식민지가 없다. 그래서 러시아 내부를 식민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농촌에 대한 계획적 약탈을 뜻했다. 변변한 산업이 없었던 당시 러시아에서 자본 축적을 가능케 할 잉여생산물이 나오는 곳은 농촌뿐이었기 때문이다. 프레오브라젠스키는 내부 식민화가 중공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 농민의 노동이 창출하는 잉여가치를 남김없이 쥐어짜는 것이라고 솔직히 시인했다.

레닌 사후 권력투쟁에서 스탈린과 맞섰던 트로츠키가 축출되면서 트로츠키 편에 섰던 프레오브라젠스키도 숙청됐으나 '내부 식민화'는 스탈린에 의해 실천에 옮겨졌다. 바로 우크라이나에서만 330만 명이 굶어 죽은 농업집단화이다.

그러나 프레오브라젠스키의 '내부 식민화'는 이게 아니었다. 국가가 헐값에 농업생산물을 사들이고 공산품 값은 높이는 부등가(不等價) 교환이었다. 그러나 강제가 아니면 이런 밑지는 거래를 할 사람은 없다. 더욱이 당시 러시아에는 농민이 사고 싶은 공산품도 없었다. 결국 '내부 식민화'는 스탈린식(式)이든 프레오브라젠스키식이든 '폭력'이 본질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한다며 최저임금을 2년 만에 29.1%나 올렸다. 소득주도성장에 드는 재원을 경제성장의 과실에서 얻을 형편이 안되자 사용자(使用者)에게서 쥐어짜겠다는 것이다. 볼셰비키의 '내부 식민화'와 다르지 않은 발상이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은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비판처럼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을 자본가로 만든 것이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존의 기로에 내몰린다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문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크든 작든 사용자는 자본가이고, 자본가는 악(惡)이며 노동은 선(善)이라는 도그마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물리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망하든지 접든지 하라는 법을 강제하는 것도 폭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상공인도 국민이다'는 절규(絶叫)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문 정부가 의도했건 안 했건 소상공인들을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희생시켜도 될 '비(非)국민'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은 경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문 정부의 무지다. 소득은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물론 '자본의 착취'를 막기 위해 일정 수준의 최저임금은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해야 소득도 임금도 늘어난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어떻게 하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해 문 정부는 깊이 사고하지 않는다. 그저 인위적으로라도 임금을 높여주면 소비 증가, 기업투자 활성화, 경제성장이 물 흐르듯 이어질 것이란 달콤한 공상(空想)에 집착할 뿐이다. 그 결과는 사상 최악의 계층 간 소득격차와 고용 감소, 2분기에 0.7%에 그친 성장률 둔화다. 이에 대한 문 정부의 처방은 재정으로 땜질하는 것뿐이다. 무능하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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