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사라진 상표와 상호가 골목엔 있습니다. 세상은 급히 변해도 골목길은 멈춰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느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골목엔 철거되지 않은 간판이 꽤 있습니다. 사라진 가게 간판 앞에(위에) 새로 들어선 가게 간판을 덧대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간판 설치 업소는 단단히 걸려 있는 옛 간판을 굳이 떼어내지 않고 새 간판을 다시 단단히 고정하는 용도로 씁니다. 그 자세한 기술 원리는 여쭤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도, 방치된 옛 간판이 꽤 있습니다. 건물에 칠해진 간판은 그 건물 칠을 새로하지 않는 이상 없애기 어렵습니다. 대구 중앙로 '본영당서점'(1945~2008) 간판이 대표적입니다. 그 덕분에 대구 향토서점의 중요한 역사 한 구절이 대구 중앙통 골목에 새겨졌습니다. 무궁화백화점의 랜드마크 가게였던 '삼보조명랜드'는 건물 바깥에 칠해진 간판은 지워졌지만, 건물 내부 간판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것들 가운데서 사라졌거나 바뀐 상표·상호도 찾을 수 있습니다. ▷쌍용제지가 1995년 시장 점유율 1위로 키우기도 했던 화장지 브랜드 '비바' ▷후지필름과 제휴해 이름을 알렸던 '롯데필름' ▷서일공업사로 시작해 지금은 에넥스가 된 '오리표씽크' 등입니다. 또 LG텔레콤의 PCS 시절 브랜드 'PCS019'와 KT의 자회사였던 KTF의 무선통신 브랜드 'SHOW'의 로고가 새겨진 장비가, 어느 골목길에 철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2014년 하나카드로 통합된 '외환카드'와 2017년 DB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동부화재' 간판도 골목에 있습니다. 금융권은 이런저런 인수합병이 잦아 상표 및 상호 변경 역시 자주 하는 편입니다.
길바닥에도 있습니다. 한번 설치하면 교체하기 쉽지 않고 상태가 양호하면 굳이 갈지 않아도 되는 맨홀이 대표적입니다.
▷'두루넷'(2006년 하나로통신에 인수된 뒤, 2008년에는 SK텔레콤에 합병돼 SK브로드밴드가 됨.)
▷'하나로통신'(두루넷을 인수한 다음 SK텔레콤에 합병돼 SK브로드밴드가 됨.)
▷'데이콤'(2000년 LG그룹에 편입됐고, 2010년 LG파워콤과 함께 LG텔레콤으로 합병.)
▷'LG파워콤'(한국전력공사의 통신사업 부문이 2000년 분리됐고, 2002년 LG그룹에 편입된 뒤 2010년 LG파워콤과 함께 LG텔레콤으로 합병.)
▷'대구도시가스'(대성에너지의 옛 이름, 2011년 변경.) 맨홀이 대구 시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이건 사라진 명소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대구 한 식당에는 대구 도심의 나름 유명한 호텔이었던 '뉴종로호텔'의 설탕(혹은 프림)통이 양념통으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매일신문사의 손님 맞이 공간이기도 했던 '매일커피숍'은 안내판만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잘못된 표기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대신 일부는 근현대문화재급 장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될만해 가치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자체로 근현대문화재급이 될 수 있어 주목할만합니다. 업장은 사라졌지으나 간판은 철거하지 않고 남겨뒀기에 대구관광의 주요 이미지가 됐던 '정소아과의원'이 바로 그렇습니다.
정소아과의원은 최근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간판도 다시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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