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깎는 시간
사과를 깎습니다
둘레를 깎습니다
붉은 껍질은 꽃이 흔들리며 망설였던 거리입니다
피울까 말까, 시간의 굴레가 영글었습니다
씨앗의 일가들이 칼날을 지나 흩어집니다
푸른 그림자 속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우리의 둘레를 깎습니다
향기는 공감각적 두께로 앉은 벌레소리입니다
잎사귀 사이로 내린 별빛이 고스란히 부서집니다
대롱거리던 표정과 비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 시간이 잘립니다
사각사각 일가들은 잘도 헤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귀에 익은 발자국 하나가 멀어집니다
칼날이 스쳐간 자국, 그 아래로
멍의 둘레를 따라 나는 고요히 걸어 내려가 봅니다
아주 사소한 이파리 하나가 붉어가는 사과의 볼 위로 나볏이 스쳐 내린 길입니다
시 – 심상숙 '사과를 깎는 시간' - 당선소감
< 내 안의 타자他者를 환대歡待하다 >

"매일신문사입니다. 심상숙씨께서 「사과를 깎는 시간」 시로 이번 매일 시니어 문학상에 당선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새해벽두, 광남 일보 신춘문예당선소식에 이어 2018년 초여름 올해의 두 번째 소식이다. 투고를 망설였던 곳이다.
초등교원으로 퇴직한지 몇 해, 『시와 소금』 계간지등단으로 지면발표가 잇달아 계속 시를 썼다. 재직당시에는 계간 『서울교육』 1998. 봄호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시가 게재된 적이 있을 뿐이다.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교원생활은 정신없다. 출근하랴, 살림하고 가족들 챙기랴, 대학원을 다니고 또 다니랴, 해마다 현장논문 써내랴. 늘 공문과 교육계획서 및 보고서작성, 수업발표에 세월을 잊고 있었다. 보육내지 아동교육의 창의성과 다양한 활동의 요구는 체력을 바닥냈다. 숨 가빴던 어느 날, 청으로부터 정년퇴직명령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퇴직을 하면서 수도권으로 이사를 나왔을 때, 낯선 거리의 백일장에 산문을 한편 써낸다. 정을 붙여보려던 때문이던가. 장원을 통보받게 되고, 그로부터 시를 쓰게 된다. 이태 후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외7편으로 목포문학상 신인문학상수상으로 김현문학제에 목포문학관을 다녀오게 된다, 다음해 2013년 봄에 시 두 편으로 진주 이형기문학제에 일박으로 다녀오게 되고, 그해 여름 광화문 조선일보사에서 여성조선 문학상수상으로 시 부문 최우수, 「목련근처에서」로 여성조선 8월호에 게재된다. 그해 가을에 「명중」 으로 김장생문학상 본상수상으로 계룡을 다녀온다. 2014년 인사동소재 계간문예지 『시와 소금』 봄 호에 「물푸레나무 그늘 」외 4편으로 등단하게 된다. 『시와 소금』 등단 지와 엔솔로지에 신작시를 몇 번 발표하게 된다. 해마다 문인협회 연호지紙와 시냇물 창작동인지紙에 작품발표를 해 오고 있다. 이곳에 왔기에 시를 쓴다고 생각한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思惟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歡喜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歡待할 것이다.
시를 써도 발표할 기회는 쉽지 않다. 올해 신춘문예당선이후 원고청탁으로 계간문예지 『다층』 2018.봄 호에 신작시, 「맞선」 과 「배경」, 그리고 시 전문 계간문예지 『예술가』 2018.여름 호에 신작시 「지난겨울이 깊었던 까닭은,」과 「바라나시*」 시 두 편씩을 발표했다. 계간문예지 『시와 소금』 가을 호 원고를 준비 중이다. 또한 올 7월 간행물로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를 출간할 예정이다. 첫 시집에 넣을 시인의 말을 적어본다.
-대기오염이 심각합니다. 대기의 오염으로 삶의 질이 뜻 밖에 좁아졌습니다. 지구를 관찰하고 기록해 나갈 인류의 종種을 보전하고자, 통계자료들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연환경의 보존과 인류의 보전에 뜻을 둡니다. 새로운 의식으로 작은 실천을 찾아 떠납니다
보편적 개념에 의해 억압된 개별자들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해방시키고자 돌아봅니다. 보편적 개념에서 동일성의 사유로부터 물러선 것들, 상처받기 쉬운 것들, 그러나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나의 의식이 나의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존재가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자연의 오묘한 비밀, 앞으로의 과학으로 반드시 규명될 지구 한 구석의 비밀을 찾아, 오늘도 새롭게 떠납니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6년 째 구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식사준비와 몸 수발, 병원 입 퇴원과 간병을 해드린다. 지병으로 병원진료가 잦다. 어느 때는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서둘러 모셔놓고 나가기도 한다. 오늘아침에도 침대문제로 걱정되어 회수여부를 문의하고 있다.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계셔 힘이 된다.
저의 시를 눈여겨 손들어 주신 매일시니어 문학상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매일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 덕분에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시를 쓰기 위해 만나 뵌 아름다우신 선생님들, 함께한 문우님들께 감사말씀 전해 드립니다. 나의 힘이고 응원자인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진정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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