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옥(1963~ )
내 생엔 왜
그럴듯한 서사가 없고
이미지만으로 기억될 서정뿐인가
한때 그게 궁금했다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뿜어낼
스토리가 없다는 건
잘못 살아온 것인가?
일찍 핀 꽃들이 부러운 때도 있었다
일찍 핀들 늦게 핀들 무슨 상관이랴 싶어지니
늦은 꽃들에게 시선이 갔다
마침내 피워낸다는 게 너무 경이로워
길바닥에 주저앉아 피어난 쬐끄만 풀꽃에게
와우, 야 반갑다, 축하해!
다만 한 번은 꽃 피워내고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생에 대한 예의 같다
서사든 서정이든 여기든 저기든
꽃의 토양은 씨앗의 날개에 달린 일
어쩌랴, 안간힘으로
화알짝, 우두둑! 기지개 펴보자꾸나
―시집 '룸펜들' (만인사, 2015)
단 한 번뿐인 생, 단 한 번은 꽃피우는 것이 '생에 대한 예의'로구나! 서정이든 서사든, 이미지든 스토리든, 일찍 피든 늦게 피든… 꽃을 피워낸다는 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래서 길가 피어난 풀꽃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와우, 야 반갑다, 축하해!" 이처럼 꽃피운 생의 축복을 함께 나누는 일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니랴? 어느 시인은 풀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암, 그렇고 말고! 꽃피운 미물과 다정스레 말을 섞고 사랑과 영혼을 주고받는 일, 이것이야말로 코스모스적 사랑이 아니랴?
땅속에 잠든 영혼이 씨앗의 시간이라면, 땅 위에 깨어난 영혼은 꽃의 시간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생을 꽃피우기 위해선 잠든 영혼의 시간에서 "화알짝, 우두둑!" 기지개 켜며 깨어나야 하리라.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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