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대구경북] <4>참여정신이 진정한 리셋의 원동력

입력 2018-07-24 15:55:41 수정 2018-07-27 10:52:25

'파도치는 촛불민심'. 지난 2016년 12월 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6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로 거대한 '파도타기'를 연출하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2016년 가을 한국정치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수백만 시민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다. 2012년 자신들의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그의 탄핵을 요구했다. 2016년 12월 9일 일부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제외한 대다수 여야 의원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에 동참했다. 지난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전원 일치로 탄핵을 인용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리고 이는 같은 해 5월 조기 대선으로 이어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일은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일대 사건이다"며 "시민이 촛불집회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며 참여 민주주의의 경험을 얻었고, 참여를 통해 새로운 정치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민의 책임이라는 점을 배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구경북이 다시금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우뚝 서려면 이러한 참여정신을 바탕으로 근본 체질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리셋 대구경북'을 위한 원동력, 참여정신은 무엇일까?

◆민주주의 속의 '참여'
사실 참여정신은 2016년 촛불집회 이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됐다. 시민단체로부터 낙천'낙선운동의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하면 2002년 '효선이 미순이 사건'에 따른 촛불시위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참여'는 정치적 참여로 귀결됐다.

한국 사회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7년 '참여민주주의와 한국사회'라는 서적이 발간되고부터이다. 그 후 오래지 않은 시간에 하나의 유행처럼 자라났다. 지난 김대중 정부가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출범하면서부터 민주주의에서 '참여'가 지니는 의미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스스로를 '참여정부'로 규정, 민주주의에서 '참여'가 갖는 의미를 구체화했다.

사실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참여'가 낯설지 않다.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국민의 참여와 지배를 담고 있어서다. 직접민주주의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이 정책을 직접 결정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도 '범위'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주권자인 국민의 주도적인 '참여' 자체는 당연한 전제이다. 정치권에서는 오늘날 논의되는 '참여 민주주의'는 그간의 대의 민주주의에서 나온 여러 문제 상황이 '참여의 결핍'에 따른 것으로 진단하고, 참여의 확대 또는 강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이자 노력이라고 본다. 그리고 주권자인 시민이 대화를 통해 사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분쟁을 없애기 위한 민주적 절차를 필수 요소로 한다.

이기우 인하대 법대 교수는 "참여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엘리트의 선거를 넘어서 정치참여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며 "참여는 선거나 사후적인 국민발안이나 국민투표 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정의 내용이나 그 과정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포함한다. 가능한 많은 사안에 가능한 많은 사람의 참여를 요구한다"고 했다.

◆우리는 얼마나 '참여'하고 싶은가?

2016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수백만 국민이 참여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이에 대한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정치학회보에 게재된 '한국 민주주의 불안정의 문화적 기반- 한국인들은 어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가?'에 따르면 응답자의 70%는 다른 어떤 체제보다도 민주주의가 낫다고 생각했고, 응답자의 85%가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통치되는 권위주의 체제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또한 선출된 대표자들이 정의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대의제 방식에 동의하는지, 아니면 국민투표와 같은 참여적 방식을 선호하는지를 알아본 결과 한국인들은 참여하고 싶은 성향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시민 52%가 정부의 주요정책을 선출된 대표자가 결정하기보다는 국민투표와 같은 참여적 방식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59%의 유권자들은 선거와 정치참여 수준이 지금보다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한국정치가 국가 형성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시민의 정치 참여 기회를 배제하고 동의 과정을 우회하는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했고,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 권위주의가 남긴 정치적 유산으로 시민적 필요에 응답하는 민주 질서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며 "한국인들의 높은 참여 민주주의적 성향은 '비판적 시민' 또는 '주창적 시민'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비판적이며 참여주의적인 시민이 민주화를 견인하는 핵심 집단이라는 민주주의 문화이론의 관점에 비춰 볼 때 긍정적 신호"라고 분석했다.

◆마을부터 '참여'가 필요하다

'참여'를 통해 변화를 체감한 이들은 주민참여예산제도 같은 거대 담론 보다 마을 단위에서 '참여'가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주문한다.

2016년 10월 12, 13일 양일에 걸쳐 서울에서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 정책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자치단체장, 외국의 마을전문가 등이 모여 다양한 주민 참여 강화방안에 대한 사례를 나누고, 시민의 성장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당시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대표적 주민참여정책으로 '더 좋은 자치공동체 주민회의'와 '생생도시 아카데미'를 소개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더 좋은 자치공동체 주민회의'는 지역별로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마을 의제를 스스로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보는 회의이다. 행정의 공적 의사결정에 주민의 주체적 참여를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씩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생활과 밀접한 마을 의제를 다룬 결과 '안전도시를 위한 초등학교 등하굣길 안전대책', '송정1동 주민센터 공유공간 마련' 등 다양한 의제가 도출되고 실행됐다. 특히 민 구청장은 송정1동 주민센터 내에 마련된 공유공간 '카페 마망'과 농협 폐창고를 '뚝딱뚝딱 예술창고'로 만든 사례를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았는데, 마망은 미혼모가 운영하도록 해 미혼모의 사회적 자립을 돕도록 했다.

생생도시 아카데미는 2012년부터 시작했으며 주민과 전문가, 행정인력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살기 좋은 도시계획을 디자인하고 실천하는 프로그램이다. 도시계획 관련 발언권과 결정권은 주민이 갖고 전문가는 학습'설명'자료제공 등으로 주민의 판단을 돕고, 행정은 법과 예산의 가능성과 한계를 검토한다. 그 결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송정시장 카페 개소, 폐교 활용 농촌체험학교 설립, 마을별 안전지도 '맘편한 광산앱', 어린이 놀이터를 만드는 원당숲 프로젝트 등이 나왔다.

당시 민 구청장은 "도시 문제의 해결책은 주민이 잘 안다. 행정기관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자치의 원리가 참여를 끌어낸다. 관치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사회에서 자치의 시작을 만들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마을 민주주의의 강화가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포럼에 참석한 브루노 카우프만 유럽주민발의 국민투표기구 대표(IRI)도 "의회, 국회, 대표 정부 등 우리는 많은 것을 위임하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대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지역 의제를 정하는 것도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 나아가 시민이 좀 더 가능성 있는 의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시민의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능동적 시민의식이 참여할 수 있는 수단, 시민의 대화를 위한 플랫폼, 민주주의 탐색 기능, 당파를 초월하는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접근 방식 등을 갖춰야 한다"면서 자신의 고향인 취리히 사례를 들어 "50만 시민이 목소리를 내고 지역의회에 발의도 한다. 50~60개 투표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다양한 의사결정을 투표로 결정한다. 모든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며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고, 이렇게 많은 투표가 이뤄지면서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고루고루 반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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