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목기(84) 재경(在京)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은 전세계 사람들이 "기적이다"라고 극찬하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산증인이다. 안동 출신인 그는 서울대 사범대학·보건대학원을 나와 서울시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삼성그룹 계열의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사무국장과 신아여행·한솔상호신용금고 대표를 거쳐 방산업체이자 첨단소재기업으로 잘 알려진 풍산의 총괄 부회장·대표이사 부회장 등을 지냈다.
풍산의 경영을 맡았을 때는 자산총액과 매출액을 취임 전보다 2배 가까이 키우는 발군의 경영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제조·금융·서비스업을 망라하는 영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세계 11위권 교역대국으로 변화시키는데 류 회장이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매일신문이 창간 72주년을 맞아 대구경북(TK)의 새로운 변화, '리셋(Reset) 대구경북'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류 회장을 만나 물어봤다. 어떻게 해야 대구경북을 바꿀 수 있을지를.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로 웅변을 토했다.
"결국 사람입니다. TK가 사람을 키울 수 있어야합니다. 갈수록 TK 인물이 사라져갑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사람을 선별해낼 수 있어야하고 선출된 사람들을 훌륭한 정치인으로 키워낼 수 있어야합니다."
"지역 인재를 키워야한다"며 시도민회 회장으로서 재경 대구경북 학숙 건립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류 회장은 각 영역에서 TK의 인재를 키우는 일에 지역민들이 합심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인재가 나와야 지역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긴 했지만 자유한국당 후보가 가장 많이 당선되면서 지도상으로 볼 때 독특한 색깔이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수도권의 시각은 어떠한가? TK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전반적 시각을 보면 한마디로 한심하다고 본다. 결속력도 없고, 인물을 기를 줄 모르고, 후학 양성도 할 줄 모르는 그런 지역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곳, 희망이 없는 곳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보수의 본산이라고? 그런 사고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출향인들조차 고향 발전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TK 출신 장관 등이 속해있는 대경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그 모임에 가서 내가 가끔 쓴소리를 한다. 지역발전에 대한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그 모임도 한달에 한번쯤 하는데 건설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
출향인들 중에 잘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고향이 너무 한심하다고 말만 해서 되나? 고향에 희망을 주고, 미래를 밝혀주는 역할을 해줘야하지 않나?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등 TK에서 대통령 5명이 나왔다. 그런데 TK는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지역중 한 곳이 됐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는 대통령 5명을 배출한 것이 문제의 출발이라고 본다. 대통령 출신지역이 성장하면 국민통합에 맞지 않다. 이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감정이다.
그런데 우리 TK는 독특한 정서를 갖고 있다. 겸손과 배려심이 강하다. 양보도 잘한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는다.
선비정신이 강해서 그런데, 이러다보니 우리가 실익을 못 챙기고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 다른 지역은 정반대다.
또 한가지 있다. 지역에서 대통령이 많이 나왔지만 지역과 대통령의 교감이 부족했다. 고향발전을 위한 교감을 갖지 못했다.
대통령을 많이 배출하다보니까 대통령만 좀 알면 벼슬이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큰 문제가 생겼다. 인재를 키우지 못했다. 대통령과의 끈만 잘 달면 벼슬을 할 수 있는데 뭐하려고 인재를 키웠겠나?
이제 끈이 없어졌다. 이럴때 일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사람을 키우는 풍토를 갖춰야한다.
-인재양성을 부르짖는 이유가 그 때문인가? 대구경북 학숙을 서울에 건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TK가 오랫동안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가장 크게 놓친 것이 인재 양성이다. 사람을 키우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지금 지역 정치인들 중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떠오르나?
정치뿐만 아니다. 내가 알기로 공직사회 등 각계각층에서 이제 TK 인재를 찾아보기 힘들다.
TK에서 만약 빌 게이츠가 나온다고 상상을 해보자.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벌어질 것이다. 성장을 가져오고,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사람이다.
내가 서울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다른 지역의 활동을 많이 봤다. 그들은 인재 육성에 많은 노력을 한다. 그래서 내가 "우리도 인재육성 사관학교를 만들어보자"며 대구경북 학숙 건립 운동에 나섰다.
그런데 지역사회의 생각이 너무 다르다. 언론도 반응이 너무 차갑다. 앞으로 10년, 20년 후를 봐야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구경북학숙은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다. 기숙사 기능도 갖지만 연구환경도 갖춰서 학생들이 자기 학문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대구경북 학숙에 대해 조금만 더 물어보자. 대구경북 학생·학부모들의 관심 사항이기도 한데 이제 가시화된 것인가?
▶대구경북연구원이 학사건립타당성용역을 했는데 종전엔 건립불가 결과가 나오더니 최근 재용역에서는 타당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결과가 왔다갔다해서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이제는 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가 이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뒤 정도로 보고 있는데 그때엔 확실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자꾸 얘기하는 것이지만 세계적 인물 한명이 어떤 지역에서 나오면 그 지역은 물론, 나라가 바뀐다. 그만큼 사람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인재를 키우지 않으면 그 지역은 반드시 퇴보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TK 표심이 많이 바뀌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 구미에서는 민주당 시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TK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가?
▶빨간색(자유한국당의 상징색), 파란색(더불어민주당 상징색)은 중요하지 않다. 쉬운 말로 보수가 밥을 먹여주나? 진보가 밥을 먹여주나? 우리 지역의 성장과 발전, 아니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자를 뽑는 것이 선거다.
우리 지역이 변화하고 있다고 하는데 더 변해야한다. TK가 몰락했다고까지 얘기하는데 몰락했다는 진찰 결과는 나왔는데 처방전이 나오지를 않는다. 아직도 비판만 무성하지 대안이 없다. 그러니 아직 가시적인 TK의 변화가 나오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 한 것에 대해 칭찬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며 비판을 하는 세력이 될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지역민들 상당수가, 또 그 민심에 기댄 TK 정치인 대다수가 무조건적인 반대와 지적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TK가 박수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TK 정치 변화를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자기 희생이 있어야한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서로 책임을 안 질려고 싸움만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많은 지역민들이 보지 않았나? TK 국회의원들이 너무 무기력했다. 그리고 책임을 지려는 사람도 없다.
이런 정치인들을 목격하니 지역민들도 이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것이다. 잘하면, 열심히하면 파란색 후보도 좋다는 것 아닌가? 지역민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제대로된 심부름꾼을 이제 찾기 시작한것이다. 감투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인들은 이제 퇴출된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을 이끌어갈 새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출됐다. 기업을 오랫동안 경영해온 CEO로서 지자체 경영을 맡게된 그들에게 어떤 각오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이의근 경상북도지사 재임 시절이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재경 안동향우회장 자격으로 행사에 초청돼 만찬장에 갔다. 그때 내가 풍산에 몸담고 있었으니 이 지사가 내 소개를 듣더니 불렀다.
그러고는 "풍산이 지역 대표 향토 기업인데 투자를 좀 하라"고 내게 말했다. 내가 바로 대답을 했다. "지사님! 기업가는 돈이 보이지 않으면 자기 마당에도 투자를 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 지사는 아무말도 못했다.
그리고는 내가 한마디를 더했다. 폐교직전이었던 안동 풍산고를 풍산이 맡아 명문고로 키운 이야기였다. "지사님, 풍산고 얘기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사는 아무말도 못했다.
지자체장은 경영자다. 단순하게만 보면 안된다. 공장도 중요하지만 내 지역에 맞는 또다른 자원을 찾는 노력도 중요하다.
내가 또다시 강조하지만 공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풍산이 풍산고를 2002년 맡게됐는데 그 당시 학교 재정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런데 풍산이 학교를 맡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학교가 됐다. 안동 풍산고는 전국적 브랜드가 됐다. 안동에 새로운 자원이 생긴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경영마인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나, 운영 메카니즘은 똑같다. "다음에 내가 꼭 당선되어야겠다"라는 생각만 갖고 있으면 발전도 없고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 CEO가 자리에만 연연해서야 회사 발전이 되겠는가?
우리 경북의 지자체장들에게는 지자체 경영자로서 관광산업에 역점을 기울여달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예전엔 의식주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행락(行樂)이 중요해졌다. 교통수단을 통해 어디론지 가서, 레져를 즐기는 시대가 본격화한 것이다. 관광산업은 부가가치가 굉장히 높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낸다. 볼거리, 먹거리, 살거리, 놀거리로 관광을 분류할 수 있을텐데 가이드, 식당 종사자, 상품판매 종사자, 레져 스포츠 종사자 등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그래도 지자체장들이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역시 산업단지 조성과 이를 통한 기업 유치다. 이 부분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면?
▶기업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특정 지역에 투자를 할 때에는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이 지역에 투자해서 공장을 지으면 다른 곳보다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나?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싸게 땅을 사서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장사꾼은 돈이 되면 어디든지 간다. 투자자들의 마음을 읽고 유혹할 수 있어야한다. 총각들이 아름다운 처녀들에게 호감이 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기업에 있을 때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투자유치설명회장에 많이 가봤다.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자체는 국장이 오기도 하고, 어떤 지자체는 계장이 나와서 설명하는 경우도 봤다. 그런 방식으로는 기업을 유혹할 수 없다.
투자유치설명회는 지자체장이 직접 나서야한다. 그래야 기업 입장에서는 성의가 느껴지고 권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지자체장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한는 것이 있다. 노조 문제다. 내가 풍산 대표를 할 때 강성노조가 있었다. 강성노조가 있으면 기업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내가 풍산의 노사문화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노사가 화합하는 분위기로 바꿨다. 그 지역의 노사문화를 변화시켜놔야 투자유치가 쉽다.
-산업화 세력이었고, 대한민국의 정치 민주화도 목격했다. TK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선진화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이제 정말 선진화로 가야한다.
선진화의 요체는 국민의식 개혁과 정치의 변화다. 일본이 우리보다 왜 잘사나? 근대 일본은 국력 축적의 역사를 일궈왔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국력 소모의 역사가 많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화 세력인 TK와 민주화 세력인 호남이 결속할 수 있어야한다. 두 세력이 결속해서 선진화를 이룬다면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얼마전 이낙연 국무총리와 전국 각 시도민회 회장단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나는 국토균형발전을 통해 국민대통합을 이뤄달라고 했다.
이 총리에게 경북 북부에 가보시라고 했다. 엄청나게 낙후된 현장이라고 얘기해줬다.
국토균형발전이 되면 국민대통합이 된다. 동서화합의 길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선진화를 이루고 마침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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