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갑질 공연과 공연 갑질

입력 2018-07-20 05:00:00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가슴이 터질 듯한 이 마음 아는지….' 아시아나항공에서 일부 여승무원들이 그룹 회장을 위해 낯 뜨거운 노래와 율동을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이른바 '갑질 공연'이란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다.

영상을 제보한 승무원은 인턴 훈련 기간 중 회장이 방문할 때마다 공연에 강제 동원되었고, 억지로 눈물을 흘리는 역할과 신체 접촉까지 강요당했다고 해서 적잖은 사회적인 파장을 낳았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우리 사회에 완전한 신조어(新造語)로 자리 잡은 듯하다. 국제사회에서조차 'Gapjil'이라는 고유명사로 외신에 소개되고 있을 정도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같은 부끄러운 '갑질'이 자꾸만 양산되고 있는데도, 막상 그 주역들은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언론인 출신 작가 강준만은 저서 '갑과 을의 나라'에서 우리네 갑을(甲乙) 질서의 근원과 발상을 민(民)과 관(官)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 깊이 침투한 갑을 문화가 공직과 민간을 넘어 민간의 영역에서도 두루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여전히 갑질의 원형은 공직 사회의 몫이다. 각종 인허가권과 예산 집행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동구청이 '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동구문화재단이 기획해서 준비하고 있던 하반기 공연을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대해 문무학 동구문화재단 상임이사가 '일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사퇴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공연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받아들인다. 경제 논리로만 공연 문화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연기획사와 연출가들도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프로그램을 확정하고 가수 섭외와 함께 출연진과 스태프 섭외를 진행하며 밴드와 조명까지 갖췄을 텐데, 그 뒷감당은 누가 할까.

공연 현장에서는 공무원들의 다양한 '공연 갑질'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수 섭외에서부터 공연 진행과 부대 장비에 이르기까지 과도한 간섭을 하며 개인적인 취향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공연 문화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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