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뭔가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사람이면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고 있나’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도 똑 부러지는 대답을 떠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소풍날을 기다리고,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고, 졸업과 입학을 기다리고, 예방주사 순서와 시험 날 같은 두려움도 얼른 지나가 버리길 기다리고,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또한 내일을 기다린다.
그래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제목에 매료되어 무작정 연극 공연장으로 향하기도 한다. 캄캄한 객석에 앉아, 공연하는 배우보다 더 간절히 ‘고도’를 기다린다. 무대에서 주인공들이 대사를 주고받으며 극을 진행하고 있는데, 오로지 ‘고도’만을 궁금해 하며 그의 출현 여부에 이목을 집중한다. ‘고도’가 나타나면 극은 끝날 수도 있건만, 그가 등장하여 주인공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줄지 기대하면서 서서히 지쳐갈지도 모른다.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로 처음을 여는 이 책은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가 나무 밑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희곡이다. 둘은 심심함을 견디기 위해 어릿광대 분위기로 횡설수설에 가까운 대화를 반복한다. 서로에게 욕하고 질문하는 장난도 친다. 춤추고 노래하고, 갖가지 체조도 하고, 자살 의견을 농담처럼 나누기도 하면서 기다리지만, 어느덧 ‘고도’의 존재나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도 혼란스럽다.
“가자 / 갈 순 없다……. / 왜? / 고도를 기다려야지. / 참 그렇지.”라는 대사를 책의 곳곳에서 후렴구처럼 반복하는 두 사람. “우린 꽁꽁 묶여 있는 게 아닐까? / 고도에게? 고도에게 묶여 있다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31쪽)”라는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현실에서 꼼짝 못하게 붙잡는 ‘고도’에 대한 의구심이 슬쩍 비치는 부분이지만 그들의 지루한 기다림은 계속되고, 그러는 중에 ‘포조’와 ‘럭키’가 다녀가고, ‘소년’도 왔다 간다.
포악한 주인과 어리석은 하인의 관계로 나타났던 ‘포조’와 ‘럭키’는, 다음날 뜻밖의 모습으로 다시 와 믿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150쪽)”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을 일깨우는 말이다. 부지불식간에 입도 눈도 귀도 닫고 세월에 떠밀려가는 인간을 엿보는 독자에게, ‘소년’은 자꾸 고도가 올 수 없다는 말을 전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 혹은 거기로 이끌어줄 어떤 손길 같은 막연한 기대를 습관적으로 품고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고고와 디디의 모습은 눈물겹다. 오늘이라는 무대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까닭이다. 시답잖아 보이는 대사들과 단순한 무대로 인간 심연의 본능적인 기다림에 대하여 이토록 발가벗겨 보여줄 수 있는, 사뮈엘 베케트라는 작가의 매력과 천재성에 대해 무한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김남이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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