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한국화가이자 고미술 수집가, 학강미술관장인 김진혁 화백은 항상 바쁘다. 석재기념사업회 부회장 겸 사무국장에다 미술을 사랑하는 모임 '예사랑' 사무국장도 12년째 맡고 있다. 학강미술관 관장이지만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일도 하나에서 열까지 본인이 한다. 그리고 작가로서 작품 활동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래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그러나 사람 좋아하는 김 관장은 항상 웃고 있다. 그리고 씩씩하다. 이달 초에는 수성아트에서 40년 화업을 정리하는 전시 '메이드 인 김진혁 40'전을 열었다. 학강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40년간 모은 작품으로 학강미술관 열어
김 관장은 2016년 10월, 40여 년 동안 수집한 고서화와 도자기, 민예품 등으로 꾸민 '학강미술관'(대구 남구 이천동)을 개관했다. 학강(學岡)은 김 관장의 호다. 학강미술관에는 3천여 점의 서화와 수백여 점의 도자기, 불상, 민예품 등이 소장돼 있다. 조선 중기부터 근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특히 17, 18세기 영남지역 서화가들의 작품이 많다. 보물급 작품도 여럿 있다. 대구 출신 석재 서병오 선생의 작품은 생애 전반에 걸쳐 골고루 소장하고 있다.
김 관장은 서울에 있는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운 간송미술관을 보고 대구에도 그런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매년 봄가을에 보름 정도만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작품을 보기 위해 가슴 설레며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서 기다리던 추억이 있다. 그만큼은 안 되지만 학강미술관을 제2간송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학강미술관을 개관한 곳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상 마치다가 1920년대 중반에 지은 별장이다. 이 동네에서 태어난 김 관장은 1977년 선친이 이 주택을 구입하면서 이사 와 최근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애썬 덕에 유럽과 일본식을 절충한 굴뚝과 일본식 붉은 슬레이트 지붕, 회칠을 한 벽, 삼나무 기둥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학강미술관은 서화의 명소가 됐다. "대구경북은 물론 서울, 경기, 제주, 나아가 우리나라 서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 사람도 페이스북을 보고 많이 찾는다"고 했다. "앞으로 전시는 물론 세미나 등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5월부터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 오후에 석재기념사업회 연속포럼 지역미술사 학술 포럼 '전통에서 혁신으로 아름다운 확장'이란 제목으로 주제를 달리하며 세미나를 열고 있다.
김 관장은 대구경북 서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고서화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도 보기 힘들다. 뜻있는 분들과 이곳에서 연구, 분류 작업도 하고 책도 발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관장은 "이곳을 제2간송미술관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죽농·소헌 선생으로부터 서예 배워
김 관장의 그림 그리기는 네 살때로 거슬러올라간다. 크레용으로 도화지에 사람과 자동차를 그렸다. 주제는 1960년대 초 대구역 광장에서 보이는 풍경이었다. 완성된 그림을 들고 어머니와 함께 대구시청 부근 이경희 화백 댁을 방문해 그림평을 청했다. "당시 이 화백은 '어린이가 나이에 비해 사물 해석력이 돋보인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고 술회했다.
김 관장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가 서예를 배워야 하다며 붓을 선물했다. 김 관장은 학교에서 돌아와 신문지 수십 장에 획을 그으며 연습한 것을 매일 저녁 아버지께 검사받았다. 이후 죽농 서동균, 소헌 김만호 서실에서 서예를 배웠다. "서숙하면서 청소도 수련과정이라며 안방과 대청마루를 걸레를 훔치던 그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중국에서 전시회를 자주 갖는 김 관장은 "중국에서는 작가에게 붓 시연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험으로 즉석에서 바로 시연해 보이면 중국인들이 깜짝 놀란다"며 빙그레 웃었다.
김 관장은 중학교 2학년 때 전국 휘호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 미술특기자로 고교에 진학했다. 이후에도 전국 서예대회에서 다수 입상했다.
김 관장은 자주 죽농, 소헌 선생이 생각난다고 했다. "조금은 엄숙한 면을 보이신 죽농 선생은 여름날, 그리 넓지 않는 마루에서 대나무와 난초의 10폭 병풍을 그려 보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 선생님이 서화 한 점을 주셨다"고 했다.
첫 소장품이었다. 대학졸업 후 교편을 잡으면서 본격적인 고서화 수집을 시작됐다. 마음에 드는 옛 사람들의 문묵과 그림을 사고 나면 밤을 새워 작품을 펼쳐놓고 글씨와 그림과 대화하며 고전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어렵사리 구한 작품은 밤새도록 보고 또 봤다. 작품에 얽힌 것을 상상하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새벽이 밝아오곤 했다"며 "너무 재미있어서 앉아서 감상하기도 하고 누워서, 거꾸로 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서화 수집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자에 대한 조예도 있어야 하고 보관과 판독 등 일반 미술품 구입과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어렵다"고 했다.
김 관장은 언제부턴가 어릴때부터 각인되어온 조선 중후기와 근대 영남의 귀재인 석재 서병오 선생의 흔적과 교남시서화회의 중심작가들의 작품을 모으고 싶었다. "그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고, 지역 미술대학이나 미술관, 박물관도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본격적인 교남지역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조선중기 성리학의 대학자 퇴계 이황을 시작으로 경상도 지역의 고서, 문인화, 간찰, 서첩 등을 비롯해 호서지방 예학의 영수인 송시열, 조선후기 사자관 서체를 확립한 정곡 이수장, 김정희 등의 작품을 손에 쥐었다.
이제 김 관장은 서화에 대해 전문가를 뺨칠 정도의 조예와 식견을 가져 진위 여부를 가려달라고 감정을 의뢰해올 정도가 됐다. 고물상도 고미술품이 생기면 그에게 가져온다. 한번은 고물상이 고서화 수백여 점을 몇 백만원에 사라고 가져온 적도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가짜고 그 가운데 진짜도 있었다"고 했다.
◆석재 기리는 일은 나의 숙명
김 관장은 지역 미술을 걱정했다. "대구시가 너무 뮤지컬, 오페라 등 공연에만 신경 써 상대적으로 미술이 소외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비엔날레도 현대미술과 융합하면 확장성, 시너지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관장은 요즘 석재기념사업회에 신경을 쓰고 있다. 세미나를 열고, 석재 평전을 쓸 계획으로 자료도 모으고 있다. "동아시아의 보배 추사 김정희와 석재 서병오를 기리는 것이 나의 숙명"이라고 했다. 김 관장은 조만간 베트남과 몽골 전시도 계획돼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제주도 함덕해수욕장 근처에 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바람돌이 학강 아트하우스' 개관도 준비 중에 있다. 이래저래 김 관장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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