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달호 수필가·전 포항 이동중 교사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듯 인간의 의식주는 자연에서 나온다. 국민이 준 권력을 남용하면 그 권력에 마가 따르듯, 자연이 준 의식주에 과욕을 부리면 자연재해가 따를 수 있다. 자연도 국민처럼 '부림'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자연은 인간 삶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종착점이기도 하다.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으로 보아 지진은 옛날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옛날보다 현대화된 요즘에 지진 얘기가 잇따라 자주 나오고, 원인도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진이 물질문명의 남용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도 한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 훼손의 역사일지 모른다. 산을 깎고, 굴을 뚫고, 무기 실험을 하고, 땅에 구멍을 뚫어 물을 주입시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자연훼손은 땅에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요,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쓴 결과, 땅의 분노가 지진으로 표출된 것은 아닌지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든다. 어떤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내진설계를 잘함이 우선이겠지만, 욕심을 절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지진의 파편이 될 물건들을 불필요하게 끌어들여 지나치게 껴안고 살 필요가 있나 싶어서다. 소용될 것만 취하라는 '무소유'의 말씀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잘 아는 사람 중에 부자가 있다. 검정색 제네시스 승용차와 68평의 아파트는 그의 부를 상징해준다. 아파트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시회가 열리는 무슨 미술관에나 온 듯 눈이 휘둥그레진다. 묵직한 분위기가 시야를 압도해 온다. 거실 벽에는 수천만원에 경매로 사들인 유명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론 도자기와 희귀한 수석 등 고급 장식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규모 5.4 포항 지진이 있은 한참 뒤였다. 하루는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진에도 완벽하게 내진설계된 집을 새로 지었다고 나를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진 공포로 가슴을 쓸어내렸던 터라 '완벽하게 내진설계된 집'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얼마나 여물게 지었을까, 몇 억이나 들였을까, 이런 궁금증이 머리를 쳐들었지만 이건 사실 궁금증이라기보단, 나도 그런 집을 지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따지고 있었다고 봄이 옳을 듯하다. 호기심에 들뜬 기분으로 지진에 끄떡없다는 집을 구경하러 나섰다. 철근콘크리트로 사방을 둘러싼 으리으리한 집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달음질쳤다. 다 와 갈 때쯤, 치뜬 내 시선은 지진에 완벽하다는 집을 찾느라 부엉이 눈처럼 굴려대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황량한 텃밭에 여섯 평 남짓한 컨테이너 두 개가 달랑 놓여 있지 않은가. 입구 쪽 컨테이너의 문이 열리며 부부가 나를 맞는다. 여진이 심상찮아 이곳에 와 있다고 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벽은 밋밋한 그대로이고, 개수대 하나와 변기, 온돌바닥이 전부였다. 지진이 와도 무너질 것도, 떨어질 것도, 부서질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안전지대였다. 텅 빈, 그 자체가 최강도의 내진설계였던 것이다. 지진 앞에서는 68평 아파트도 제네시스 승용차도 다 헛것이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해답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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