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 위해 분투한 한 가장의 ‘주거 투쟁기’
요즘 10, 20대들의 절망을 말할 때 3포, 5포, N포로 표현하곤 한다. 이 현실적 절망의 범주에 출산, 연애, 취업, 결혼과 함께 '집'이 포함된다.
따지고 보면 집에 대한 욕구는 인류 역사와 함께 있어왔고 N포 세대들이 부러워하는 기성세대들에게도 주거 욕구는 똑같이 작용했다.
50~70세대들은 옥탑방, 반지하, 다가구주택, 원룸, 달동네를 전전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노력했던 기억을 공유한다.
현대인은 누구나 좋은 주거를 희망한다. 도심 빽빽한 아파트 중 내 집하나 없고, 저 많은 집들 가운데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없는 것을 한탄한다. 치솟는 집값을 욕하면서도 빨리 내 집을 마련해 저 대열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은 30대인 저자가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집을 하나씩 되돌아보며 쓴 '주거 이력서'다. 저자의 치열했던 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삶에 집이, 내 생활에 방 한 칸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주거 투쟁'이 돼 버린 내 집 마련의 꿈=50대 이상 이라면 기숙사, 옥탑방, 하숙, 자취, 월세, 다가구주택, 원룸, 달동네, 반지하, 빌라 같은 어휘에 익숙하다. 저자 역시 10대에서 30대까지 대략 20여 스타일의 주거 형태를 경험했다.
저자는 "서른여섯 살이 돼서야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고 대출이 대부분이라 내 집이라 부르기도 무색하지만,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내다보면 15년 만기상환일이 도래하고 말 것"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2031년에야 온전한 내 집을 갖게 되는 셈인데 까마득하지만 그날은 올 것이기에 '대출이자' '만기상환'과 같은 경제 용어를 언급하면서 '투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주택 대출 상환에 걸리는 인고의 15년을 저자는 '주거 투쟁'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살았던 집을 하나씩 돌아보면서 정리한 적이 있어요. 촘촘히 칸을 메워 가면서, 처음엔 주거 형태의 변화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덧 '주거=인생'이라는 등식이 성립해 있었어요."
저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20년 전, 10년 전 살았던 집을 떠올리면 그 공간, 그 시절 우리 삶의 희로애락은 추억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그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 인생을 숙성 시킨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왜 그토록 이사를 많이 다녀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숨은 비밀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저자는 반지하에서 생활할 때 아이들이 비염으로 힘들어하고 바퀴벌레가 활보하는 모습을 보며 '양지 바른 지상'을 꿈꿨다. 아이의 건강 문제는 이사를 해야만 하는 강력한 이유였다. 그렇게 30대에 부모가 된 저자는 '공기 좋고 볕 잘 드는 곳'을 찾아 이사를 해야했다. 출산, 아이 양육으로 책임이 늘어난 30대에는 자기 자신 말고도 가족의 삶과 건강을 살펴야 했기 때문에 이사는 필연의 과정이었다.
◆생애 모든 일상은 주거와 연결=집은 삶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주거는 건강과 교육, 결혼, 육아, 자아실현을 뒷받침하는 생존 공간이자 생활공간이기 때문이다. 주거가 불안해지면 삶의 근간도 흔들리게 된다.
사람마다, 인생의 시기마다 적당한 주거 형태가 있다. 교통과 실용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관점도 있고, 친환경 조건을 우선순위로 삼는 사람도 있다.
나이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저자의 10대, 20대, 30대에 주거를 생각하는 조건이 달랐듯이, 그 이후와 노년에는 주거관이 또 달라질 것이다. 언제 다시 이사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생겨 다시 이사를 결심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이사는 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우리들 삶의 과정 역시 '주거 투쟁'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책에 풀어놓은 저자의 이른바 '주거 투쟁'은 50~70 세대라면 다들 공감하는 이야기다. 성공적 재테크의 영웅담이나 경제 불평등의 고발 같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주거에 대한 고민 혹은 꿈을 적어낸 성장기에 가깝다. 때문에 저자는 집에 대한 기록을 '청년 주거 문제' 등 사회적 담론으로 말하지 않고 회고담과 개인적인 고백으로 풀어냈다.
이 책은 우리의 기쁨과 아픔 그리고 희망을 담은 인생의 장소, '집'을 테마로 내밀한 사적(私的) 기록으로 풀어낸 것이다. 나와 가족이 자라고 성장하는 곳,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 일상을 함께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곳, 집은 바로 그런 장소다.
이 책이 저자의 주거 문제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주거 문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건 그래서다. 저자가 파란만장한 주거 투쟁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른바 '5포 세대'인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조언도 새겨 들을 만하다.
나에게 허락되는 최소한의 공간이 '투쟁'의 영역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나와 우리 모두를 응원하는 책이다. 28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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