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6월 레퀴엠을 들으며

입력 2018-06-27 13:26:22

배성희 고려야마하 피아노 대표

배성희 고려야마하 피아노 대표
배성희 고려야마하 피아노 대표

대한민국의 성적은 신통치 않지만 그래도 어디가나 축구가 가장 큰 화제다. 스포츠 말고도 2018년 6월은 한국인들 모두에게 참 정신없었던 달로 오래 기억될 듯하다. 그 떠들썩한 와중에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기념일, 현충일과 6월 25일을 챙기다가 6월이 조용한 추모의 달이라는 것도 뒤늦게 떠올리게 된다.

추모의 마음에 반드시 슬픈 음악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서양음악을 수놓은 최고의 작곡가들이 자신의 영혼을 바쳐 남긴 레퀴엠(진혼곡)을 감상하기에 일년 중 이 시기만큼 적당한 때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6월의 날도 어느덧 셋만 남아있는 오늘,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이들 모두에게 위로와 안식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레퀴엠 두 곡을 소개한다.

가장 잘 알려진 레퀴엠은 역시 모차르트의 작품이다. 미완성으로 남은 이 곡은 작품 자체보다 오히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더 알려졌다. 영화 '아마데우스' 에 나오는 것처럼 가면을 써 자신을 감춘 작곡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몰래 레퀴엠을 주문했다는 것인데, 이는 살리에리가 젊은 천재 모차르트를 질투했다는 사실과 함께 순전히 영화적인 상상이다. 간경화로 건강이 악화된 모차르트가 남은 체력을 모두 소진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고, 남겨진 작품은 제자였던 쥐스마이어가 스승의 마지막 지시를 따라 완성시키게 된다. 후대 사람들의 최대 관심은 과연 얼마나 많은 가필이 모차르트 사후에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었는데, 과연 쥐스마이어의 생각이 많이 들어간 작품의 후반부는 전반에 비해 듣는 이들의 집중력을 모으지 못한다. 결국 남아있는 작품을 해석하는 새로운 음악가들의 연주 성향에 따라 갖가지 다른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연주하는 지휘자나 합창단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색채의 결과물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품은 미사의 기본 형태인 키리에,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 데이를 포함해 크게 여덟 부분으로 나뉘는데,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베이스 라인, 중요한 음형 등은 모차르트의 오리지널이라고 보아도 좋다.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가 오랜 기간 동안 개작을 거듭해 1900년 초연한 레퀴엠은 '온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레퀴엠' 이라고 할 수 있다. 포레가 이 특별한 레퀴엠을 작곡한 계기는 1885년과 1887년 잇달아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가까운 지인이었던 건축가 요제프 르 수파쉐의 죽음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비교적 작은 규모이며 엄격한 라틴어 미사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 작품은 오랜 기간 수정과 축소, 확대를 거듭하며 바뀌었는데,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의 편성이 매우 특이하다. 애초에 바이올린 등 화려한 느낌의 고음악기가 빠진 작은 관현악 편성과 오르간이 연주하길 원했던 포레의 구상은 어딘가 투명한 수채화적인 색채와 맑고 깨끗한 합창의 천국적인 울림이었던 것 같다. 전곡 모두가 아름답지만 마지막 악장인 '인 파라디숨'(낙원에서) 은 그야말로 영혼이 하늘 위에 있는 파라다이스에 와 닿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속에 살아있는 자의 슬픔이 들어있다면 포레의 작품은 이미 자유로운 영혼들을 위한 천상의 음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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