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 산책] 이웃집 대문 앞에서/성씨(成氏)

입력 2018-06-27 21:02:12

이웃집 대문 앞에서 서너 번을 불렀더니 步出隣家三四呼(보출인가삼사호)

아이 나와 ‘주인께선 안 계신다’ 대답하네 小童來報主人無(소동래보주인무)

지팡이 짚고 꽃구경을 간 것이 아니라면 若非杖策尋花去(약비장책심화거)

틀림없이 거문고 안고 술꾼 찾아 노는 게지 定是携琴訪酒徒(정시휴금방주도)

 

이 시를 지은 성씨(成氏)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조선전기의 문신 인재(仁齋) 성희(成嬉)의 딸인 동시에, 진사 최당(崔塘)의 아내였다는 것이 남아 있는 정보의 거의 전부다. 성희의 딸이고 최당의 아내라면 성씨는 여성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얼핏 살펴보면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여성의 작품으로 보기가 주저된다.

보다시피 화자는 이웃집을 찾아가서, 서너 번을 ‘계시냐’고 문을 두드린다. 이윽고 아이가 나와 ‘주인은 계시지 않는다’고 답한다. 주인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지팡이를 짚고 꽃구경을 간 게 아니라면, 거문고를 안고 술꾼들을 찾아가 한바탕 신명난 줄 풍류를 즐기고 있을 게다. 작품의 행간에 도저한 풍류와 호방한 낭만이 넘쳐흐른다. 앞앞이 한숨이고 구석구석 눈물인 조선시대 여성들의 여느 작품과는 그 느낌 자체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 가만? 이 시에 나오는 ‘주인’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남성일 게다. 왜 그러냐고? 거문고를 안고 술꾼들을 찾아가는 것은 남성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성씨는 이웃집 남자 주인과 요즘 말로 ‘사귀기’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을게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은 이웃집 주인이 아니라 성씨의 주인, 다시 말하여 성씨의 남편을 가리키지 싶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 시는 어떤 사람에게 지어준 작품인데, 그 ‘어떤 사람’도 남편일 게다.

성씨의 남편 최당은 풍류와 낭만이 도저한 사람이었을 터다. 그러다 보니 집에 붙어 있을 날이 없다. 오늘은 집안 일이 태산 같은데, 남편은 벌써 행방불명이다. 이웃집에도 남편이 없다. 그렇다면 남편은 어디로 갔을까? 꽃구경을 간 게 아니라면, 거문고를 안고 술꾼들을 찾아가 왁자지껄 막걸리를 퍼마시고 있겠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휴 지겨워. 도대체 나는 이게 뭐야.

성씨는 왜 이런 시를 남편에게 지어주었을까? 반성문을 쓰고 변소청소 하라는 뜻일 게다. 이 시의 주제는 뭘까? “당신 정말 그 칼래” 일 게다.

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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