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사회 그늘진 지역 찾아 밝은 화음 선물
약간 '고급진' 느낌의 클래식과 사회기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고급 예술과 소외계층과의 간극(間隙) 때문이다. '빈민가에 주차된 외제차'처럼 언뜻 양립하기 힘든 조합, 그랜드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박향희 단장은 이 조합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다.
대구에서 그녀의 지휘봉은 교도소 강당을 가르고, 경북에서 바이올린 선율은 조손(祖孫)가정 안뜰을 울린다. 1997년 시작한 '찾아가는 음악회'는 벌써 21년째를 맞았고 공연 횟수로 2천300회에 이른다. 형편이 어려운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매주 벌이는 '꿈나무 음악 레슨' 누적인원도 2천명에 이른다. 지역에서 음악으로, 그것도 클래식으로 열심히 사회봉사, 재능기부를 펼치고 있는 박 단장을 만나 보았다.
◆21년 째 소외계층 방문 '찾아가는 음악회'="한 요양원에서 연주회를 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난생 처음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다'며 제 손을 놓치 않는 겁니다. 죽기 전에 소중한 추억을 하나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면서요."
박 단장이 처음 '찾아가는 음악회'에 나선 건 1997년 영챔버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부터다.(1999년 그랜드오케스트라로 개편) 사회의 그늘진 지역을 찾아 밝은 화음을 전하자는 취지였다. 대구경북 양로원, 구치소, 소년원, 장애인학교를 찾아 무료 연주를 시작했다.
"구치소, 소년원 등 수용자들이 음악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합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 감옥에 울려 퍼진 모차르트 선율처럼 구금(拘禁)의 공간에서 음악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요"
한때 그는 교도소에서 장기수, 무기수들을 대상으로 밴드 지도를 한 적도 있었다. 교도소 밖 무대에서 자신들의 음악이 울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들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기타를 치고, 입술이 터지도록 색소폰을 불었다. 1년 후에 교도소에서 발표회를 열어주었는데, 박 단장 일생에 가장 값진 음악회 중 하나였다.

◆'꿈나무음악인 레슨' 등 재능기부도=박 단장은 형편이 어려운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매주 한 번씩 1대1 무료 레슨을 하고 있다. '꿈나무 음악인 레슨'이다.
당장 생활 걱정이 우선인 아이들에게 바이올린 레슨이 옳기는 한 걸까? 그러나 회의는 금방 기대로 돌아섰다. 아이들은 매주 교실로 빠지지 않고 나왔다. 초창기에 레슨을 받았던 학생들이 어느 덧 중견 음악인이 되어 나타날 때도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기적은 그녀 삶의 보람이다.
온 가족이 함께 음악을 배우는 '꿈다락 토요문화 학교'는 박 단장의 히트 프로그램. 문화예술진흥원 사업에 공모해 전국에 두 곳만 뽑는 사업자에 선정됐다. 대덕문화전당, 수성구 각 동사무소에서 가족 단위 수강생들이 클래식 레슨을 받는다.
최근 박 단장의 히트 작은 단연 '문화파출소'다. 파출소 유휴공간을 활용한 어린이 문화예술 교육으로, 어린이들이 파출소에서 경찰복을 입고 클래식을 연주하고 공연도 한다. 치안(治安)의 공간 파출소를 치음(治音)의 공간으로 바꿔보자는 발상이었다. 이 '문화파출소' 공로로 박 단장은 작년 문화체육관부 장관상을 받았다.
◆30일 이탈리아서 초청 공연=봉사 인생 20여년, 박 단장의 얼굴에 최근 화색이 돌고 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피안 카스타니요에서 열리는 'Monte Parnaso'국제 뮤직페스티발에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문화파출소' 어린이명예 경찰 연주단이 초청을 받은 것이다.
작년 이 행사에 참관했던 이탈리아 지휘자 마리아노 빠띠가 경찰단복을 입고 연주하는 꼬마들의 모습에 반해 시에나 시장(Luigi Vagaggini)에게 초청을 주선해 주었다.
(빠띠는 현재 박 단장과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고 있다. 개런티는 서울 공연 개런티의 10분의 1 수준. 박 단장 사회기부에 감동한 그가 역시 '자선' 수준 수고료로 공연에 응했다.)
이제 대구의 '어린이 경찰 연주단'은 30일(토)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연주회를 연다. 그날은 특별히 '한국의 날'로 정해 국제적으로 광고까지 나간다. 단원들의 어머니들이 한복, 차(茶)를 준비해서 한복 페스티벌, 한지공예 작품, 한국 차 시음회를 열며 한국 홍보에 힘쓸 예정.
봉사로, 공연으로 해외 교류로, 일견 화려해 보이는 박 단장의 이면에 숨겨진 아픔이 있다. 박 단장은 2005년 오페라 '나비부인'을 일본에서 수입, 공연을 추진하면서 흥행에 실패해 가산을 탕진했다. 제작비만 5억원 대였고 연쇄 피해까지 포함하면 적자는 더 컸다.
"공연 실패는 저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어요. 돈만 잃은 게 아니고 지역 문화계 인사들과 갈등을 일으키며, 인적 네트워크도 모두 부도가 났습니다. 모든 마찰은 제가 만든 거고, 모든 갈등은 제가 원인이었던 거예요."
최근 들어 박 단장은 옛날 우울한 기억들이 물러가고 좋은 기운들이 순환하는 것을 느낀다. 작년에 '문화파출소' 운영 성공 사례로 큰 상을 받았고 또 이번 이탈리아 초청공연처럼 해외 공연 기회도 잡았다. 모든 게 음악이 가져다 준 축복이라는 박 단장. 이젠 까칠했던 성격도 누르고, 한껏 세웠던 '갈기'도 고르며 불편했던 것들과도 결별하고 있다. 자신의 선율이 음지를 밝혔듯, 이젠 음악이 자신의 어둠을 밝게 비추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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