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원도심 중구에 역사와 문화 입혀 도시재생… 주민 삶의 질도 올라
"역사가 있는 곳에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는 추억이 있습니다. 중구의 숨겨진 역사와 이야기들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던 제 이야기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겠지요"
대구 중구의 역사는 윤순영(66) 중구청장의 재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6년 취임한 윤 구청장은 세월의 흐름과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쇠락하던 원도심 중구에 '도심재생'이라는 키워드를 도입했다. 문화 시민운동을 했던 경력을 살려 세월에 묻혀있던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내고 부각시켰다. 오래 전부터 영남의 중심으로 기능해온 대구의 역사와 정체성을 중구 골목골목에 심었다.
그가 구정을 마무리하는 지금, 중구는 말 그대로 '재생(再生)' 됐다. 노점상으로 가득했던 동성로는 매력 넘치는 젊음의 거리로 재탄생했다. 좁고 어두웠던 골목길에는 고풍스러운 옛 역사와 문화가 스며들었다.
'천 개의 골목에 천 개의 이야기를 입힌다'는 목표로 열정적으로 추진한 근대골목투어는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돼 지난해 방문객 2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도약했다.
"관광불모지 취급을 받던 대구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교까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재산권 침해 등으로 '문화재 근처에 살면 재수가 없다'던 이들이 이젠 '우리 동네에 이런 문화유산이 있는데 어떻게 살려볼 수 없겠느냐'며 찾아오는 등 주민들의 문화적 양식이 풍성해진 점이 가장 뿌듯합니다."
그가 '근대골목투어'를 처음 구상한 건 구청장 취임 이전, 분도문화예술기획 대표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대구시가 항일 시인 이상화의 고택을 허물고 소방도로를 내겠다고 발표하자 이를 저지하고자 '이상화고택보존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았다.
"전국 최초로 순수 문화운동을 일으켰다는 자부심과 함께, 대구 곳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더 발굴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죠."
윤 구청장과 동료들이 지켜낸 이상화 고택은 구청장 취임 2년 뒤 인근 서상돈 고택과 함께 근대골목투어의 핵심 코스로 탈바꿈했다.
12년 동안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흐른 것은 아니었다. 초선 구청장 시절 동성로 노점상 철거를 두고 상인들과 심한 갈등을 빚었고, 도심재생사업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잘못되면 어쩌나' 잠 못 이룬 시간도 길었다.
그러나 윤 구청장은 위기 때마다 '내가 아니라, 함께 가는 주민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초심을 되새겼다.
"리더는 명령하는 자리가 아니라, 확신을 주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이 중심이 돼 일을 끌어가고, 이들이 흔들릴 때마다 '할 수 있다'고 확신을 주려 노력했습니다."
반대로 자신 스스로가 흔들릴 때는 함께 하는 주민들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 "두렵고 흔들릴 때마다 '주민들이 나를 믿고 확신을 갖고 함께 가고 있는데, 실패한들 결국 우리 모두의 경험이고 자산이다'라는 생각으로 버텼죠"

그는 지난 12년 간 함께 노력해온 공무원들에게 '부디 사람을 좋아해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이지만, 공직자들이 주민들에 대한 애정으로 업무에 임한다면 주민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자연히 중구는 더 발전할 겁니다."
윤 청장은 임기가 끝나는 7월부터 중구 대봉동에 마련한 사무실로 출근한다. 앞으로도 도심재생과 지방분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휴식은 나중으로 미뤘어요. 마지막까지 윤순영은 윤순영답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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