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이퀄 오퍼튜니티

입력 2018-06-19 05:00:00

1980년대 초, 군 복무 시절 접한 '이퀄 오퍼튜니티'(Equal Opportunity) 교육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이 교육은 전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미군 전체에 부여된 정책인 까닭에 '서비스맨'(군인)이면 누구든 일정 시간 교육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사무실과 구내식당, 도서관, 숙소 등 부대 시설 어디든 기회균등과 인종성 차별 문제를 다룬 포스터가 나붙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병력을 소집해 반복 교육할 만큼 군대 내 차별 문제는 주요 현안이었다. 비록 제3자 입장이지만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미국의 고민을 피부로 느낀 셈이다.


뒤집어보면 미군 내 차별 문제는 예방이 최선의 해결책이자 매우 민감한 문제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차별 문제를 잘못 처리할 경우 파급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자연히 지휘관도 이 문제를 엄중히 다뤄야 했고, 모든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게끔 교육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군 흑인 조종사로 구성된 332 전투비행단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 '레드 테일스'나 미 해군 최초의 흑인 잠수사 칼 브레셔의 실화를 재구성한 '맨 오브 아너' 등 여러 영화가 이 같은 배경을 잘 말해준다. 핵잠수함 내 인종 차별 코드를 담은 '크림슨 타이드'도 흑백 인종 갈등에서 비롯된 지휘 체계의 붕괴가 끔찍한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그제 검찰이 발표한 6개 시중은행 채용 비리 수사 결과는 신분 차별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중대 사건이다. 임원인 아버지가 딸을 면접해 최고점을 주고(광주), 부행장 자녀와 동명이인을 착각하는 촌극까지 벌어지고(국민), 주요 거래처 인사 자녀를 보훈 대상자로 둔갑시켜 특채하기도(대구) 했다.


이 같은 불법은 취업 사다리에서 추락한 보통 집안의 자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차별이 군대를 무너뜨리고, 조직을 붕괴시킨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결과다. 지난 수십 년간 비슷한 불법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나. 취업에까지 마수를 뻗친 신분 차별은 사회와 국가를 멍들게 하고 분열과 갈등의 진흙탕을 만든다. 불법적인 차별의 뿌리를 지금 뽑아내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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