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오늘

입력 2018-06-18 11:32:57 수정 2018-06-18 19:10:07

한 사람이 떠났다. 그녀와의 시간은 추억이 되지 못했다. 아픔… 아픔이 되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숨 가쁘게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호흡이 가빴다. 서른여덟, 그녀의 나이는 병을 앓기에 너무 젊었다. 온몸이 붓고, 혈색이 헐거워지고, 숨이 가빠지고….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나면 그리로 갈 거예요." 그녀 스스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부엌 구석에서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던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를 위해 나는 날이 맑을 때면 바람을 쐬러 가자며 그녀를 휠체어에 앉혔다.
친구! 그녀와 나는 친구가 아닌 듯 그렇게 친구였다. 여자라는 것과 아줌마란 것, 무엇보다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친구의 이유였다. 같은 수술을 했고 힘겨운 시기를 같이 넘겼다. 무엇보다 다시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다시 살아가는 기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병은 재발했고 손쓸 수 없을 만큼 전이되었다.
초여름의 바람은 참 고왔다. 푸른 풀냄새가 섞여 있고, 해가 저물면 붉은 노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땀 냄새도 스며 있었고, 어느 집 옥상에서 까닥까닥 말라가는 빨래 냄새도 스며 있었다. "바람이 참 좋지요?" 우리 둘은 동시에 같은 말을 곧잘 했다. "세 살, 다섯 살 애들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참 예쁘겠어요." 그녀의 이마를 쓸어주며 나는 살포시 웃었다. "아무도 생각하지 말아요. 나만 생각해요. 사랑은 내가 다 나은 후에… 그때 건강하게 아낌없이 주면 돼요." 그녀의 핏기 없는 눈이 젖었다. "살고 싶어요. 억울해요. 왜 하필 내게…."
부고가 날아왔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한동안 무기력했다. 피곤하다는 것, 춥다는 것이 전제되고 나 역시 전철을 밟았다. 진통제 몇 알로 통증을 대신한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거뜬히 이겨낼 것이기에 내 부고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경험자다. 한 번 더 경험하는 것일 뿐 달라지는 건 없다. 아니 달라진 게 있다면 그간 아픔을 대하는 내 정신력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의지가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불꽃처럼 살아야 해 오늘도 어제처럼. 저 들판의 풀잎처럼 우린 쓰러지지 말아야 해.' 노랫말처럼 나, 하루하루 불꽃처럼 살리라. 오늘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의 '오늘'을 살리라. 누군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오늘을 내가 당당히 살고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매일 나를 세뇌시키는 까닭이다.수필가

박시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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