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알잡' 모로코-이란편

입력 2018-06-14 16:03:46 수정 2018-07-16 13:15:29

최근 단교한 두 나라 경기장에서는 어떨지
앙숙에 더 강해지는 이란, 모로코전에는?

이란이 겪은 황당한 사건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이키가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에 축구화 등 장비 지원을 중단했다. 나이키는 이달 11일 "나이키는 미국 기업이고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에 따라 이 같은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정부가 '이란핵협정' 탈퇴 선언에 따라 경제제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대표팀 감독은 "중요한 경기를 1주일 앞두고 장비를 교체할 순 없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기원전 490년에 있었던 마라톤전투의 패전을 여전히 기억하며 2천 년 넘게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 강한 이란이다. (이란은 자국에서 열린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마라톤을 정식 종목에서 제외했다) 그들의 자존심을 축구화로 긁은 셈이다.

이란은 4차례 진출한 월드컵(1978, 1998, 2006, 2014)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월드컵 통산 성적은 1승 3무 8패. 그런데 단 한 차례의 그 승리가 좀 특별했다. 당시 앙숙 미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기 때문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예선때 이란과 미국은 경기가 있기 전 꽃을 주고받으며 일종의 평화 세리머니를 했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갔을 때 이란 선수들의 체력은 달랐다. 주 이란 미대사관 인질 사태 등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 두 나라 선수는 물론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은 탓이었다.

이란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서 넣은 골은 총 2골인데 모두 이 경기에서 나왔다. 페널티박스로 크로스된 볼을 붕 떠서 헤더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고는 울부짖는 듯 내달리던 골세리머니의 주인공 에스틸리(Hamid Estili) 선수가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이번에도 그런 감정 실린 상대가 될 개연성이 있는 팀이 모로코이다. 하필 지난달 이란과 단교했다. 2009년 단교했다가 2017년 관계를 회복했었는데 1년 6개월이 안 돼 다시 단교한 것이다. 모로코가 분리독립을 둘러싸고 분쟁 중인 서부 사하라 반군들에게 이란이 자금과 군사훈련, 무기 등을 지원한다는 이유였다. 이란은 우리 시각으로 16일 자정 모로코와 조별예선 1차전을 치른다.

모로코는 지리상으로는 아프리카다. 그러나 생활권은 포르투갈, 스페인의 이베리아반도에 더 가깝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 조별리그를 포르투갈, 스페인과 함께 하게 됐다. 모로코는 기원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무슬림들은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기도 했다. 현재 모로코 대표선수 일부가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뛰고 있을 정도로 심리적 거리도 가깝다.

모로코는 33년간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아프리카 연합(AU) 회원국이 아니었다. 터키와 더불어 유럽연합에 가입하려 했다는 것도 이런 심리적 거리를 더 당기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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