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대구 각계 반응 "평화체계 구축의 희망" vs "아직 완전한 신뢰 힘들어"

입력 2018-06-12 18:21:49

"역사적인 순간 감격스럽지만…아직 넘어야할 적지 않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지역민들은 대체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북미 간의 합의가 현실화되기까지 넘어야할 산이 적잖다는 우려도 잊지 않았다.

◆참전용사, 탈북민 "희망 봤지만, 무조건 믿긴 어렵다"
6·25전쟁 참전용사들과 북한이탈주민들은 이번 회담이 남북 평화의 불씨가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아직은 믿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황병태(89) 6·25참전유공자회 대구시지부장은 "전쟁 이후에도 KAL기 폭파 사건과 금강산 관광객 사살, 천안함 폭침 등 숱한 사건을 일으켰던 북한과의 갈등이 이렇게 해소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북한이 단 번에 핵무기를 폐기하진 않더라도 이번 회담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꿈을 이룰 첫 걸음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6·25전쟁 참전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문경상(88) 씨는 "김정은의 개방 의지가 강해보이는 만큼 이번 정상회담이 핵 폐기의 첫 단추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생전 통일을 보진 못하더라도 교류 협력 분위기는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북한이탈주민들도 회담 결과를 반기면서도 북한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지난 2009년 탈북한 김모(51) 씨는 "북한이라는 위협이 해빙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북에 남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김정은 정권이 기존 체제와 핵무기를 정말 포기할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다"고 했다.

북한이탈주민 이모(45) 씨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탈북 종업원 등 남한에 사는 탈북민 송환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들려 뒤숭숭하다"면서 "오늘 회담 결과만으로는 당장 생계와 삶의 안전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다른 북한이탈주민 장모(42) 씨도 "북한에서 살면서 받았던 사상교육에 비춰보면 김정은이 아무런 꿍꿍이 없이 전향적으로 국가를 개방하는 게 가능할 지 의심스럽다"면서 "비핵화 외에 인권과 탈북민 안전 보장을 요구하지 않는 점도 불만"이라고 했다.

◆대학생, 직장인, "오랜 적대 관계 해소 기대"

대학생 이동근(26`경북대 행정학과) 씨는 "70년 가까이 적대시하던 북한과 미국 정상이 만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전환점"이라며 "당장 시험과 취업이 급한 대학생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이슈는 아니지만 경제제재가 풀리면 대북관련 사업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기대했다.

조현영(22`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씨는 "아직 대학생들은 북한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북한과 관련된 강의가 더 개설되고 전국적으로는 북한학과 개설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모 구청 공무원 김모(43) 씨는 "대립만 하던 북미 정상이 악수하는 모습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될 것"이라며 "오랫동안 갈등을 일으킨 북핵 문제에서 해방되는 계기이자 통일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37·대구 수성구) 씨는 "수많은 위기를 이겨낸 두 정상의 만남은 전 세계 모두 환영할만한 순간이었다"면서 "시민들도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와 '북한은 비정상 국가'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직장인 김후정(25·대구 수성구) 씨는 "오랜 대립의 시간만큼 양국 정상이 만났다고 단번에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다시 악화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지역 경제계 "개성공단 다시 문 열길…"
지역 경제계는 북미정상회담 성과를 크게 기대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였던 서도산업 여동구 이사는 "개성공단 대신 베트남 등으로 떠난 업체 관계자들은 의사 소통이 잘되고 근로자들의 숙련도가 높은 개성공단이 나았다는 평가를 많이 한다"면서 "평화 분위기를 타고 개성공단도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경제교류협력이 활성화되면 업계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역 자영업자들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반응을 보였다.

대구 북구 침산동에서 치킨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는 오승택(32) 씨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북미 정상의 만남으로 평화의 물꼬가 트인만큼 과거처럼 서로 으르렁대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매천시장 농산물 중도매인 송모(64) 씨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북한으로서는 어차피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라며 "북한이 비핵화한다고 주장하더라도 검증이 어려울 텐데 우리나라만 막대한 비용만 내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외국인들 "동아시아 평화 체계 구축 계기될 것"
지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도 이번 회담은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중국 안후이성 출신 마틈(25·계명대 경영학과) 씨는 "역사적 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 한국과 북한, 한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서 "북한이 중국, 일본, 한국 등 다른 나라와도 적극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결혼 후 대구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타에코 스즈키(42) 씨는 "한반도 평화는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다양한 국가가 얽힌 복잡한 문제"라며 "북미 정상의 만남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매우 놀랐다. 세계 평화 체제로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머물다 돌아간 싱가포르 출신의 샬린 장(26·여) 씨는 "이런 역사적인 순간의 현장이 싱가포르라는 게 자랑스럽다"면서 "앞으로도 더욱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와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계 미국인 마이클 리(28·미국 시애틀) 씨는 "북한을 믿을 수 없는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도 많다. 한 번의 만남으로 미국과 북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과제가 남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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