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둘 이상 모일 땐 서열 없으면 불안…『일본인의 심성과 일본문화』

입력 2018-06-16 05:00:00

일본인의 심성과 일본문화/가와이 하야오 지음/한울 펴냄

일본인의 심성과 일본문화 표지
일본인의 심성과 일본문화 표지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지성, 가와이 하야오 선생이 자아·가족·교육·노동·과학·예술·종교·죽음 등을 주제로 현대 일본인의 내면풍경을 담백하게 그려낸 책이다. 지은이는 "(일본인의 특질은) 대세가 결정되고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슬슬 따라 나설 뿐이고, 틀렸다고 느꼈더라도 결단하고 행동할 줄 모른다"며 일본인들에게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집단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다, 고 말한다.

1946년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펴낸 '국화와 칼'이 외부인의 눈으로 본 일본문화의 특성이라면, 이 책은 일본인, 그것도 임상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철학자가 분석한 '일본문화의 특질'이다.

◇ 개성보다 여전히 절대적 평등의식 강해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은 가족을 생각하거나 세상의 눈을 의식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단념하며 살았다. 과거에는 결혼도 개인으로서 자신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다른 어떤 요인들에 의해 상대가 결정되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메이지 시대 때(1868년 1월 3일~1912년 7월 30일까지 44년) 서양의 개인주의가 들어오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나 찾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속도는 매우 느렸고, '나를 찾는 일'이 일반화되기도 전에 일본적 집단주의가 득세해버렸다. 그 결과 일본은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 (전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집단주의를 강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인들의 집단주의 특성은 20세기 상반기 일본이 전쟁국가로 나아가는 데 한몫을 했다. 사진은 태평양 전쟁 당시 출격하는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와 환송하는 학생들 모습. 매일신문 DB
일본인들의 집단주의 특성은 20세기 상반기 일본이 전쟁국가로 나아가는 데 한몫을 했다. 사진은 태평양 전쟁 당시 출격하는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와 환송하는 학생들 모습. 매일신문 DB

패전 후 민주주의 시대가 되자 일본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나'를 중시하게 됐다. 부모의 말씀을 좇아 중매결혼을 하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부모 직업과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엘 가고 좋아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지은이는 "그럼에도 일본인들의 '개성'은 서구인들의 '개성'과는 차이가 크다. 일본인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평등감'이 절대적이고, 그런 평등주의는 창조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유럽의 초등학교는 이른바 '월반'과 '낙제'가 있지만, 절대적 평등감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은 개인의 능력차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이 개인의 능력과 관심사의 차이를 전제하고 교육을 생각하는데, 일본에서 개인의 능력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면 '차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능력 차이에 대한 외면, 절대적 평등에 대한 맹신은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지은이는 "우수한 학자들이 해외로 떠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 신분제도, 명목상 폐지됐으나 여전히 존재

일본은 일찌감치 신분제도를 폐지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일본인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듯 하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개인'을 발상의 출발점으로 놓기가 대단히 어렵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서로를 알고 친해진다는 미국식 인간관계는 일본인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가미카제 특공대와 그들을 향해 절하는 일본 학생들 모습. 매일신문 DB
태평양 전쟁 당시,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가미카제 특공대와 그들을 향해 절하는 일본 학생들 모습. 매일신문 DB

'일본인들은 둘 이상이 모였을 때 구성원 간에 1번, 2번, …하고 서열이 매겨지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선배, 후배라는 것에 강하게 구애받으며, 개인이 각자의 개성에 따라 판단을 내리지 않고 어떤 사람의 위치는 사전에 정해진 서열에 의해 결정된다.

서양의 영향을 받아 능력차를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과거 육군사관학교 졸업 성적 순위가 평생 효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본 도처에 널려 있다. 졸업시험 성적의 높고 낮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경쟁원리가 작동하지만, 일단 졸업한 뒤에는 졸업성적이 신분이 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현재 일본에서 '○○ 대학 출신'은 일종의 신분과 같다. 그래서 개인의 개성이나 흥미와 무관하게 자신의 성적으로 가장 높은 신분을 확보할 수 있는 대학·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재수,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원하는 학과가 아니라)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 논쟁의 목표를 승리에 두는 일본사회

개성을 신장하자면 모종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 남들과 다른 존재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한 타인과 충돌이 발생한다. 기독교를 믿는 문화권에서는 결국 '바른 자가 승리한다'는 신념이 강하다. 이는 곧 '승리한 자가 바를 것이다'는 생각을 연결된다. 따라서 발생하는 싸움을 회피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기 보다는 싸움을 공평하게(fairly) 하려고 노력한다. 공평하게 진행된 싸움에서 승리한 자를 바른 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구 교육 영역에서 가장 큰 싸움은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논쟁에서 승리하면 '바른 것'으로 증명된다. 이에 반해 일본인들은 집안에서조차 논쟁을 싫어한다. 일본인들은 서구인들이 좋아하는 '토론'을 잘 못한다.

일본인들은 상대가 집안사람인가, 바깥사람인가를 무엇보다 먼저 판단하고, 바깥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싸우며, 싸움의 목표를 승리에 둔다. 이는 토론을 통해 새로운 것, 몰랐던 것, 바른 것을 찾아나간다는 서구의 토론 자세와 사뭇 다르다.

◇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 필요

지은이는 근대 서구에서 과학기술의 발달 또는 서구인의 근대적 자아를 떠받친 것은 기독교라고 말한다. 수많은 서구의 과학자들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 세상은 신의 창조물인 만큼 틀림없이 어떤 명쾌한 법칙이 있을 것이라는 억단(臆斷)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개인주의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더라도 '신의 눈'을 의식하므로 일탈에 한계가 있다는 믿음 혹은 안전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일본이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이 이승에서 안심하고 살아가려면, '나를 초월한 존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에는 다양한 신이 있으니, 그들 다양한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강화하는 것도 일본이 더 개성적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나 찾기, 2장 가족의 미래, 3장 학교의 향방, 4장 일 만들며 살기, 5장 풍족한 소비의 추구, 6장 과학기술의 향방, 7장 이문화 체험의 궤적, 8장 꿈꾸는 미래, 9장 현대인과 예술, 10장 나의 죽음과 현대, 11장 종교와 종교성, 12장 애니미즘과 윤리 등이다.

▷ 지은이 가와이 하야오는…

1962년 스위스 융 연구소에 유학해 일본인 최초로 융파 정신분석가 자격을 취득했으며, 교토 대학교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임상심리학자, 사회학자, 철학자이며 문예비평가이기도 하다. 인간 사회와 문화, 그리고 심리의 여러 측면을 연구했다. 특히 옛날이야기나 신화에 나타나는 일본 문화의 특징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을 많이 했다. 교토 대학교 명예교수,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 2002~2007년 문화청 장관을 역임했다.

279쪽, 1만8천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