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코앞이다. 각 당들은 표심을 잡기 위해 막판까지 사력을 다하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의 여성 당선자 비율은 광역의원 20%, 기초의원 28.4%로 전국 평균보다는 높았지만 아직 평등한 수준에 이르려면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정당이 있었다. 바로 '대한여자국민당'이다. 대한여자국민당은 1945년 9월 18일 창당된 한국 최초의 여성 정당이다. 대한여자국민당의 강령은 '신한국건설과 남녀평등권을 표방하고, 남자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민주사회의 건설, 근로자와 여성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민주경제의 확립' 등이다. 총재는 임영신, 부총재는 이은혜·김선이었다. 당원수는 약 30만 명이었다고 한다.
대한여자국민당은 임영신이 부통령선거에 떨어진 후로 당세가 약화되고 당원의 이탈과 자유당에 의한 압박 등으로 실제적인 활동을 못하고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1961년 해체되었다. 그 실체는 자유당의 외곽 단체로 기능한 한계는 있었지만, 어쨌든 30만명의 여성을 당원으로 둔 여성 정당이 존재했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한여자국민당 임영신이 부통령으로 두 번째 입후보했을 당시 신문(동아일보 1960년 2월 14일)을 보면 임영신을 두고 '치마두른 호걸'이라 표현하고 있다. "외모에서 풍기는 육중감과 그의 과거 경력 및 현재의 지위가 그러한 표현을 하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도 언론은 여성 정치인에 대해서 '패션'과 '외모'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19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정치인을 옭아매는 성 구분이 답답해서였을까. 우리나라 첫 여성 의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장을 한 채 당선되었다.
신문(경향신문 1967년 12월 14일)에는 '첫 처녀 의원 탄생의 날'이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당시 34세로 국회의원이 된 김옥선에 대한 기사에서 "남장의 노처녀 김옥선 씨는 …벅찬 감격에 못 이겨 사나이(?)다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남장을 하게 된 첫째 이유는 가정환경에 있었다.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둘째로는 젊은 나이에 사회에 뛰어들어 적응하다 보니 작업복이나 군복이 편했고 자연스레 남장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 사회적 환경이 반영됐다.
남장을 하지 않고는 정치를 하기 어려웠던 현실은 남성 중심의 정치 환경을 보여준다. 정치 분야에도 여전히 여성들의 유리천장은 두껍다. 이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최세정(대구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TK를 제조·첨단 산업 지역으로"…李 청사진에 기대감도 들썩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사설] 민주당 '정치 복원' 의지 있다면, 국민의힘에 법사위원장 넘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