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와 '마롱 브륄레'

입력 2018-06-11 10:07:19 수정 2018-06-11 16:57:41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한 장면.

지난 봄 어느 날,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요리 과정과 그에 따른 다양한 음식들이 쉴 새 없이 나오는 '음식영화'로 더 잘 알려진 영화, '리틀 포레스트'. 그래서 어떤 이에겐 그저 평범한 음식영화 중 하나로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겠지만, 준서맘에겐 자신이 정말 있어야 할 자리로 옮겨 심어져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사람이 도와주어야만 하는 식물들의 '아주심기'를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로 보였다.

그러나 담담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영화가, 나에겐 너무도 아프고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음식영화라는 주변의 이야기에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연예인이라곤 1도 관심이 없었던 내가 그래도 '어, 괜찮네'라고 생각한 특정 배우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더해져 조금은 더 솔깃해져 있었던 터다. 그러던 즈음에 같이 그 영화를 보러 가자는 예전 수강생의 손에 이끌려 못 이기는 척 영화관을 찾았다. 물론 그 연예인이 나오는 영화를 본다는 기대감에 주책 맞은 약간의 설렘을 가슴에 품고 말이다.

물룐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어느 한 배우만이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영화 속 사람들, 이웃, 관계, 노동, 요리, 음식, 아주심기, 자연과 같은 모습들이 더 크게 내 가슴에 들어찼고 결국 영화를 마치고선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마도 그 영화 속에서 나 자신의 민낯을 보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다른 무엇인가를 쥘 수 있다,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실상은 절대 움켜 쥔 손을 펴려 하지 않는, 그래서 '아주심기'를 할 자신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주절대는 앵무새 같은 나조차 낯선 내 민낯을...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한 장면.

물론 계절에 따른 음식도 많이 나온다. 여자 주인공이 고향집을 찾은 첫 번째 이유가 '배가 고파서'였으니까. 하지만 그 전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정당한 노동이다. 정당한 노동에는 계절에 따른 식재료들을 얻기 위한 과정은 물론,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만드는 과정, 즉 요리 역시 노동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다른 누군가가 차려 준 밥상 앞에 앉아 그 음식들을 먹기만 한다면 그것은 요리라는 노동의 과정이 포함되지 않은 말 그대로 '차려진 밥상'인 거다. 차려진 밥상을 돈으로 살 수는 있지만 내 몸으로 노동을 하고 내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들이 아니기에 그 차려진 밥상 위에 있는 음식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참된 가치를 알기는 쉽지 않을테니까.

정당한 노동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의미 있는 한 끼. 그 원인과 결과의 순환은 닭과 병아리의 이야기처럼 선후 없이 이어져 우리네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게 한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광활한 우주 속 자연은 순환되고 나 역시 그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는 순간, 내 마음 속 어디에선가 잠자고 있던 내 안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발견했다 해서 모두가 그것을 위한 삶을 살 의무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지 않고서도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으니까.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한 장면.

다시 '음식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요리, 또는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음식이 완성되기까지의 요리과정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미묘한 차이까지 콕 집어 설명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삼색 설기떡'을 여자 주인공이 만들었을 때, 동네 소꿉친구 중 한 명이 '아줌마가 만든 건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네가 만든 것은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난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여자 주인공이 속으로 '귀신같은 녀석'이라며 삼색 설기떡을 만든 과정을 엄마가 만든 것과 비교하며 설명하는 장면이 그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외에도 음식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많다.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한 장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음식들 중에 '마롱 브륄레'를 한번 만들어보자. 여자 주인공의 엄마가 말한 것처럼 원래 이름은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로 차가운 크림 커스터드 위에 유리처럼 얇고 파삭한 캐러멜 토핑을 얹어 내는 프랑스의 디저트다. 브륄레는 '타다(burn)'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브륄레르(brûler)에서 파생된 단어로, 크렘 브륄레(crèmebrûlée)는 글자 그대로 '불에 탄 크림(bruntcream)'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전적 이름처럼 크림 커스터드를 불에 태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븐 속에서 중탕으로 찌듯이 구워낸 커스터드 푸딩 위에 설탕을 뿌리고 그 설탕을 주방용 토치로 그을려 얇은 캐러멜 막을 만드는 것이다. 혹시나 태운 커스터드 크림을 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괜찮다. 영화 속 어린 시절의 여자 주인공도 그런 줄 알고 놀란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만든 크렘 브륄레는, 달콤한 푸딩 바닥에 마롱(marron), 즉 삶은 밤을 넣어 만든 것으로 보다 정확한 이름으로는 '마롱 크렘 브륄레'라고 해야 하지만 그 이름을 어려워하는 어린 여자 주인공을 위해 엄마는 보다 쉽게 '마롱 브륄레'라고 알려줬다. 영화 속 마롱 브륄레는 엄마와 여자 주인공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음식 중의 하나로 회상되는 것은 물론 여자 주인공이 어색해진 동네 소꿉친구에게 사과의 의미로 건내 주는 달콤 쌉싸래한 음식으로도 등장한다.

만드는 방법이 크게 어렵지 않고 차갑게 만들어 서빙 하는 음식이라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몇 일 동안은 보관 할 수도 있다. 거기에 화려한 불쑈까지 덤으로 뽐 낼 수 있으니 이런 요리법 하나쯤 익혀 두셨다 손님상차림이나 지인들과 함께 하는 티푸드 자리에 짜잔 하고 내 놓으면 좋지 않을까? 자, 그럼 준서맘과 함께 영화 속 '마롱 브륄레'를 만들어 볼까?

요리하는 준서맘 0707down@naver.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