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벽화까지 덮어버린 현수막…유권자들 "도심 도배해 공해"

입력 2018-06-07 19:00:00

선거사무소로 궁전맨션 신고, 후보자 "법적으로 문제 없어" 2014년 지선보다 33% 증가

5일 오후 대구 궁전멘션 외벽에 한 후보의 선거 홍보 현수막이 붙어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5일 오후 대구 궁전멘션 외벽에 한 후보의 선거 홍보 현수막이 붙어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올 들어 선거 현수막 허용 기준이 완화되면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심 곳곳에 현수막이 난립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다. 도심 명소를 가리거나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도배'하듯이 중복 게시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궁전맨션 벽면에는 이상화, 서상돈, 이육사 등 대구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3명의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난 2014년 도시철도 3호선 개통에 맞춰 대구시가 1억원을 들여 조성한 대형 벽화다. 그러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일부터 이육사 시인의 얼굴은 볼 수가 없다. 한 구의원 출마자가 선거 현수막으로 시인의 얼굴을 덮은 탓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후보자는 선거사무실로 신고한 건물 벽면에 대형 현수막을 걸 수 있다. 수성구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후보자는 궁전맨션을 선거사무실로 신고했다"며 "항의 전화도 꽤 왔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해당 후보자도 "아파트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서 설치했다"며 "나라에 보탬이 되려 출마했으니 이육사 시인도 양해해줄 거라 믿는다"고 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홍보 현수막이 거리에 난립하고 있어 미관 저해 및 안전사고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5일 오후 대구 범어네거리에 선거 홍보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홍보 현수막이 거리에 난립하고 있어 미관 저해 및 안전사고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5일 오후 대구 범어네거리에 선거 홍보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특정 후보자가 같은 장소에 여러 장의 현수막을 내걸어 '도배' 논란이 일기도 한다. 올해부터 '읍·면·동마다 1매'로 제한되던 현수막이 '읍·면·동 수의 두 배 이내'로 완화된 탓이다. 장소 제한도 사라졌다. 교차로를 기준으로 범어 1~3동이 갈라지는 수성구 범어네거리의 경우 후보자 당 최대 6장의 현수막을 걸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수성구 범어네거리에는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들이 중복 게시돼 있다. 범어네거리를 둘러싼 17장의 현수막 중 4장은 특정 수성구청장 후보였고, 다른 구청장 후보와 대구시장 후보, 대구시교육감 후보도 2장씩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 숫자도 급증했다. 대구시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과 대구시교육감 후보자 등 6명이 신청한 현수막은 1천668장에 이른다. 이는 후보자가 8명이었던 2014년 지방선거(1천112개)보다 556개(33%)나 더 늘었다.

대구시선관위 관계자는 "현수막을 치워달라는 항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 씩 걸려오지만 신호등이나 표지판 등을 가리거나 도로를 가로지른 경우가 아니면 제재할 수단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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