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遺事<유사>♪] 마지막 잎새

입력 2018-06-06 14:57:32

경주 현곡 하구리에 ‘정귀문’이 살았다. 속세를 떠나 낮에는 나물먹고 물마시고 밤에는 팔을 베고 자는 시인이었다. 배호가 생전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 '마지막 잎새'의 가사는 그가 쓴 시다.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도 그의 시이다. 경주 현곡 남사 저수지 둑에는 마지막 잎새의 노래비가 있다.

정시인은 현곡초등학교 교장 딸을 짝사랑했는데 교장선생님이 전근을 가는 바람에 정귀문은 사랑을 시작도 옳게 해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1970년 늦가을 멍든 가슴을 쓰다듬으며 저수지 둑에 앉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보던 중 시상이 떠올라 쓴 시가 마지막 잎새다. 배호는 이 시가 노래가 되어 그 음반이 나오기 7일 전에 세상을 떠버린다.

출세한 모든 이들의 뒤에는 그를 도운 그림자 인간이 있다. 배호를 유명가수로 만든 이는 배상태다. 그는 성주 사람으로 일찍 대구로 나와 성광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KBS방송국에서 가수활동을 하며 남산파출소 옆 이병주, 추월성 작곡 사무실에서 작곡을 배우고 훈련을 쌓은 후 서울로 간다. 그는 배호와 삼종숙이 되는데 당시 야간 주점 밴드에서 북이나 치던 배호에게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춘단 공원’, ‘능금 빛 사랑’ 등의 노래를 주어 가수로 만든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68∼69년 서라벌가요대상에서 2년 연속 배호가 최우수 남자 가수 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배호는 가수로서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점차 대한민국 유명가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배호는 노보 텔 뒷길에 있던 청수장 여관에 숙소를 정해두고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가수생활을 한다.

1970년에 문을 연 동촌 카바레에서 오후 8시 반, 10시 반 2회 상설 공연을 하고 대구 방송국들을 통해서 ‘돌아가는 삼각지’를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다. 출연료는 이미자보다 더 많이 받았다. 2001년 11월에는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 모임 팬클럽’이 결성된다. 사람의 인생행로에서 남여의 사랑은 빠질 수가 없는 종목이다. 방송과 행사를 뛰는 와중에도 배호는 시내 한 교장선생님 딸과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의 로맨스는 배호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결실 없는 사랑이 되고 만다.

호사다마(好事多魔), 학교 공부도 별로 하지 못했고 악보도 읽지 못하던 가수 배호가 대구를 기반으로 전국적 가수로 비약은 하지만 그는 신장염에 걸린다. 삼각지 로타리를 부를 때는 ‘삼각지’하고 좀 쉬었다 ‘로타리로’ 라고 부른다. 마치 현인 선생의 창법을 흉내 내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 창법이 배호가 멋 내느라 일부러 그렇게 부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사실은 폐에 물이 찬 배호가 숨이 차서 '삼각지 로타리'라고 한꺼번에 부를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의 마지막 방송은 1971년 10월 20일 MBC방송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이다. 방송 후 잠깐 가을비를 맞았는데 감기몸살에 걸리게 되고 면역성이 극히 약했던 그에게 신장염은 급속히 악화된다. 치료받던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응급입원을 했으나 의사들을 가망이 없다고 한다. 기이하게도 그가 죽어가던 그 병실은 차중락도 마지막을 맞이했던 방이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미아리로 가던 승용차속에서 배호는 그의 친척이자 선생인 배상태의 품에 안겨 “아저씨! 가슴이 답답해요.”라는 말을 남기며 2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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