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46년 동안 베트남전 전공 훈장 기다린 배병해 씨 "저승길에 가져가고 싶어"

입력 2018-06-05 17:35:06

전투 중 팔 관통상 입었지만…육군 "훈장 추천 기록없어 불가능" 답변

"저 세상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면 보여드릴 훈장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배병해(69) 씨는 얼굴을 찡그리며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하다는 그였지만 46년 전 베트남에서 겪었던 그 날의 전투는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올렸다. 배 씨는 "당시 전투에서 공을 세워 표창은 받았지만 지금까지 훈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배 씨는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72년 1월 27일 파병됐다. 그리고 두 달여 만에 안케패스 작전에 투입됐다. 안케패스 작전은 1972년 4월 1일부터 25일 간 베트남 퀴논시와 캄보디아 국경에 이르는 19번 도로의 요충지 안케통로를 탈환하는 작전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안케패스작전에서 638고지를 탈환한 뒤 오른쪽 팔 관통상을 당한 배병해(69)씨가
베트남전 당시 안케패스작전에서 638고지를 탈환한 뒤 오른쪽 팔 관통상을 당한 배병해(69)씨가 "전공을 세운 공로로 무공훈장을 준다는 말만 믿고 46년째 기다리고 있다"며 1972년 8월 4일자 파월 수도사단 소속으로 전공 표창이 기록된 병적기록표 사본을 보여주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배 씨가 소속된 맹호 26연대는 맹렬한 공세 끝에 638고지를 탈환, 도로를 다시 열었다. 당시 한국군 전사자는 75명, 부상자는 109명이었고, 북베트남군은 705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격렬한 전투였다.

배 씨는 638고지에 태극기를 꽂았지만 전투 과정에서 오른쪽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총소리와 함성, 고지에 올라 태극기를 꽂으라는 상관의 명령이 뒤섞인 아비규환이었다"면서 "팔에 총을 맞고 의무대로 실려가는 동안에도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부상을 입은 배 씨는 106후송병원에 입원했다. 다행히 팔을 절단하진 않았지만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고 있다. 3개월 뒤 퇴원하는 배 씨는 그 해 8월 4일 표창을 받았지만 바로 훈장을 요청했다고 했다. 배 씨는 "상황이 어수선하니 기다리라는 상관의 말을 믿고 마냥 기다렸다"면서 "귀국 후에도 훈장 수여를 문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고 그렇게 46년이 흘렀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배 씨는 1973년 2월 12일 귀국해 39사단에서 복무를 이어갔고, 그 해 12월 20일 만기제대했다. 그러나 삶은 고달팠다. 부상을 입은 팔은 제 힘을 쓰지 못했지만 홀어머니와 동생 네 명을 보살피려 지게꾼과 화물차, 굴착기 운전 등 안해본 일이 없다. 배 씨는 지난 4월에도 육군본부에 훈장 수여를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 관계자는 "전공은 훈장수여 대상이지만 베트남전 훈장수여자의 비율은 7%정도로 모두가 다 받는 것은 아니다"며 "전투공적은 표창으로 완료됐고, 훈장 수훈 추천 등의 기록이 아예 없는 상황이어서 훈장 수여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배 씨는 "변변찮게 살아왔지만 저승에 가서 부모님 앞에서 '살아서 그래도 이런 좋은 일도 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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