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에 울려퍼진 '대건 산가'… "형님, 제가 약속 지켰습니다"

입력 2018-06-03 17:16:24

'최초 산악인 의사자' 고 백준호 씨와 약속 지킨 후배 최진철 씨.

국내 최초의 산악인 의사자인 고 백준호 씨와 약속을 지키고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최진철 씨. 본인 제공
국내 최초의 산악인 의사자인 고 백준호 씨와 약속을 지키고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최진철 씨. 본인 제공

"백준호 형, 여기서 대건 산가를 부르는 게 우리 목표였는데, 제가 (혼자) 대신하게 됐습니다."

지난 5월 16일 오전 11시 38분(현지시각),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노래 한 구절이 울려퍼졌다. '능선따라 올라간다 올라가…(중략). 대건고등 산악부다, 야! 야!.'

이 노래는 국내 최초의 산악인 의사자인 고 백준호 씨(1967~2004년·대건고 35회) 씨가 가사를 썼다는 대건고 산악부 노래 '대건 산가(山歌)'다.

고 백준호 씨는 지난 2004년 5월 18일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원으로 정상 부근에서 탈진한 동료 고 박무택(1967~2004년) 씨와 장민(1975~2004년) 씨를 구하려다 조난당했다. 이 사연은 영화 '히말라야'(2015년)로 재조명돼 큰 울림을 줬다.

노래를 부른 이는 고 백준호 씨의 고교 후배인 대건고 OB산악회 소속 최진철(44·대건고 41회) 씨였다. "언젠가는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대건 산가를 부르자고 약속했죠. 그 약속을 이제야 지켰네요."

최 씨는 "형이 산에 묻힌 그 날 함께 하지 못한 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3년 로체(8천516m) 서면 등반 원정대에 백준호 씨와 함께 참가했지만 건강 악화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이듬해 계명대 원정대에 방송 촬영 보조로 동행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촬영이 무산되며 한국에 남았다는 것이다. 최 씨는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스러운 마음이 컸다"고 했다.

지난 3월, 최 씨는 산행을 준비하고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석달 간 휴가를 냈다. 원정대는 회사 이름을 따 '파이온텍 원정대'로 붙였다.

지난달 13일 오전 3시 30분. 동료 3명과 셰르파 3명 등 모두 7명의 대원이 베이스캠프를 떠나 에베레스트 남동릉 루트를 올랐다.

출발 전, 최 씨는 하늘에 있을 백준호 씨에게 '성공을 도와달라'고 빌었다. 간절한 바람 덕분일까 등정 첫날을 제외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정상을 300m 앞두고 산소통과 비상용 인공산소가 모두 바닥나는 위기가 닥쳤지만, 최 씨는 마지막 힘을 짜내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정상에서 그는 대건 산가를 부른 뒤 1시간가량 머물며 "준호형! 고맙다"고 되뇌었다.

하산 과정도 쉽진 않았다. 산소 부족에 따른 착란증과 수면증이 닥쳤다. 최 씨는 정상에서 내려온지 사흘 만에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돌아왔다.

"오랜 꿈을 이뤘습니다. 하늘에 있는 백준호 형님이 돌봐줬다고 생각해요. 이 기운을 올해 수능을 앞둔 학교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산악인 최진철 씨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대건 산가'를 불렀다. 최 씨는 지난 2004년 에베레스트 산행 중 조난 동료를 구하려다 산에서 잠든 산악인 의사자 백준호 씨의 후배로, 백 씨와 '언젠가 에베레스트에서 대건고 산악부 노래인 대건 산가를 함께 부르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지난 5월 16일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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