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가 아닌 인간 다산 정약용을 만난다

입력 2018-05-31 11:36:50

발가벗겨진 인간 다산/ 차벽 지음/ 희고희고 펴냄

작가이자 사진가인 차벽은 다산 정약용의 삶과 흔적이 밴 전국 유적지를 답사하며 그 행적을 사진과 글에 담았다. 다산은 서울과 호남 외 예천, 경주, 울산, 죽령, 영천에도 많은 자취를 남겼다. 사진은 그의 유배지인 강진 다산초당. 매일신문 DB.

600여권의 도서를 저술하며 기울어가는 조선을 개혁하려 했던 다산 정약용. 그는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며 성리학 교조(敎條)에 빠진 조선을 개혁하려했던 경세가였다.

뛰어난 학자, 관료였고 천문, 지리, 건축, 의학, 과학, 철학은 물론 시재(詩才)로서도 이름을 떨친 문인이기도 했다.

과거급제-유배-해배(解配, 유배에서 풀려나는 것)를 거듭 했던 그의 변화무쌍한 삶만큼 그의 발자취도 전국에 걸쳐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의 발자취와 삶의 흔적을 찾아 쓴 역사 기행서이다. 소설가이자 사진작가인 차벽은 전국을 답사하며 드라마틱한 다산의 삶의 흔적을 사진과 텍스트에 담아냈다. 작가가 각지를 다니며 찍은 300여장의 사진과 700 페이지에 이르는 답사 기록이 빼곡히 담겨 있다.

다산 정약용의 방문 기록이 남아있는 경주 포석정. 매일신문 DB
작가이자 사진가인 차벽은 다산 정약용의 삶과 흔적이 밴 전국 유적지를 답사하며 그 행적을 사진과 글에 담았다. 다산은 서울과 호남 외 예천, 경주, 울산, 죽령, 영천에도 많은 자취를 남겼다. 사진은 그의 유배지인 강진 다산초당. 매일신문 DB.

◆다산의 중요한 삶의 흔적 99곳 정리=이 책은 다산의 학자적 삶이나 방대한 저술업적을 조명하기보다는 '인간 다산' 즉 사람다운 삶의 현장을 찾아 나선 책이다. '불우한 지식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정도로 유난히 굴곡진 삶을 살았던 다산의 인생 여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10년 동안 땀과 발로 쓴 기록물이다. 작가는 '기록에 의존해 현장으로 가보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해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말한다. 한번 가서 실패하면 다시 가고 또 가고, 그러는 동안 강산이 한번 변했다.

저자는 전국 수백 곳 행적 중 다산 삶의 중요한 장소 중 99곳을 찾아내 정리했다. 어린 다산이 뛰어 놀던 경기도 남양주부터 생을 마감한 팔당호 변 생가까지 망라하고 있다.

비교적 가까운(조선 후기) 인물인 까닭에 다산의 삶이나 흔적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작가는 '시 몇 줄 내용을 가지고 현장을 찾아다닌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특히 변화가 심한 대도시에서 흔적을 찾는 일은 어렵고 힘들었다.

◆남인으로 몰려 정치적으로 늘 비주류=천재로 일컬어지던 다산은 쉽게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벼슬에 나가서도 승승장구 한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산은 성균관 유생시절 3년 반 동안 상위권 들지 못하고 뒷자리나 지키는 평범한 유생이었다. 과거에도 19번 이상 떨어졌다.

불운한 관운(官運)만큼 정치적으로도 우울했다. 남인 입장에 있었던 그는 늘 비주류였다. 주류에서 밀린 그가 할 수 있는 건 천주학에 빠지고 금기시 하던 불교서적을 탐독하는 것이었다.

6년 만에 과거에 합격한 후 벼슬에 나아가서도 부침은 계속되었다. 다산이 벼슬에 나아가면 반대파 노론에서 몰려들어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시 잘 짓는 솜씨로 정조(正祖)에 올인 했지만 주군의 사망 이후 그의 운명도 추락하고 만다.

천주교 신유사옥(辛酉邪獄) 때 유배 18년은 더 비참했다. 작가 표현대로 '그냥 내동댕이쳐진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10만 잔의 술을 마시고 통곡하는 일' 뿐이었다.

'정조의 남자'로 불리며 한때 중앙무대에서 주목 받았던 다산, 한편으로 그를 특출한 인간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 그러나 저자는 견해를 달리한다. 즉 호기심과 기억력이 뛰어난 건 맞지만 비범할 정도는 아니었고 흔히 말하는 노력하는 천재 범주로 다산을 이해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방문 기록이 남아있는 경주 포석정. 매일신문 DB

◆예천, 경주, 울산, 죽령에 다산의 행적=저자는 다산의 일대기를 소년기부터 성균관 수학기, 벼슬 전기와 후기, 유배 초기와 후기 등으로 나누고 그의 흔적을 찾아 남한산성과 진주성, 성균관 등 99곳의 장소를 찾아간다.

다산의 행적과 관련해 경북과 관련된 내용이 제법 있다.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다산은 소년시절 지방 관료였던 부친을 따라 예천에 내려와 한동안 지내기도 했다. 선몽대, 내성천, 반학정에서 경전에 열중하며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1789년 과거에 급제한 뒤 승정원에서 일하던 다산은 8월 승정원의 허락을 얻어 아버지를 찾아 울산으로 내려온다. 울산부사로 있던 부친과 추석을 함께 지내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여정과 각 고을에서 있었던 일이 정리돼 있다.

서울을 출발한 다산은 문경새재를 넘어 신녕, 영천을 거쳐 울산으로 향한다. 중간에 경주에 들른 그는 포석정에서 경애왕의 흔적을 더듬으며 시를 남기기도 했다.

울산에서 아버지와 명절을 보낸 다산은 다시 서울로 향했다. 조정에서 급히 귀경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경주부윤과 술자리를 나눈 다산은 영천으로 향한다. 은해사 인근 역참에서 휴식을 취한 후 아버지와 헤어지고 죽령을 넘어 서울로 향하며 영남지방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동안 다산의 행적은 서울 승정원 시절과 강진에서의 18년 유배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의 정치적 중요 동선(動線)이 이 구간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산의 일대기를 '서울-강진' 중심에서 벗어나 전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 그와 별 관계가 없어 보였던 영남지방에서 그의 행적을 찾아낸 것은 작가의 큰 업적이다. 예천, 영천, 울산, 경주, 죽령 등에서 다산의 흔적을 더듬으며 흐릿하게나마 다산의 흔적을 추억했다면 이 책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696쪽, 2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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