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달인과 승부사

입력 2018-06-07 05:00:00

홍헌득 편집부국장
홍헌득 편집부국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래의 달인이라는 것은 세계가 인정한 사실이다. 최근의 북미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차라리 그를 '거래의 현인' '거래의 신'이라 찬양하고 싶을 정도다. 경우에 따라 비열하기도 야비하기도 한 트럼프이지만, 거래와 협상이라는 분야에서만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상대가 누구든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트럼프는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그는 거래를 '즐기는' 자다.

시간을 지난 5월 하순으로 되돌려 보자. 김계관, 최선희 등 북한의 여러 인사가 나서서 잇따라 미국을 향해 비난과 욕설을 퍼붓자 트럼프는 이렇게 반응했다. '당신들이 보여준 극도의 분노와 적개심으로 인해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할 수 없다'고, 그래서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할 것이라고 그는 김정은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면 전화를 하거나 편지하세요." 거래의 달인다운 카운터펀치였다. 그것도 중재자로 나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떠나자마자 내뱉은 폭탄선언이었다. 이후의 상황은 우리 모두가 지켜본 대로였다.

김정은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공개서한이 발표된 지 8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바로 그다음 날부터 북한의 태도는 180도로 달라졌다. 북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열심히 트럼프의 시간표에 맞춰 회담 준비에 임하고 있다.

트럼프의 다음 행보는 더욱 놀라웠다. 트럼프는 미국의 제재 대상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미국의 심장 뉴욕으로 불러들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지막 담판을 하게 하는가 하면 백악관까지 '모셔' 김정은의 친서를 받았다. 백악관을 떠나는 김영철을 차까지 배웅해주는 파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이 그의 방식이다. 비즈니스맨으로서 트럼프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정상회담이 다시 제 궤도를 찾아 들어왔다. 그러니만큼 양측은 어떻게든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도 '빅딜'(big deal)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세계의 이목은 싱가포르 센토사 섬으로 쏠리게 됐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당연히 북한의 비핵화이다.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일부라도 가급적 빨리 해외로 반출해 폐기하고 싶어 한다. 북한은 그들대로 계산이 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덥석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 체제 보장을 담보받기 위해 개발한 핵무기를 체제 보장도 받기 전에 폐기할 수는 없다. 싱가포르에서 예상 가능한 가장 유력한 빅딜은 바로 미국과 북한 간의 '종전선언'일 것이다. 아마 트럼프-김영철의 면담에서도 거론되었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도 현 상황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최선일 터.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문제는 이후에 논의될 수 있는 문제이다.

모든 것이 착착 정해졌다. 날짜와 시간도 확정되었고, 회담 장소도 결정되었다. 이제 거래의 달인과 승부사, 두 지도자의 통 큰 거래만 남았다. 세계가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두 정상이 꼭 기억하길 바란다.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세계 평화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기 바란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