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 미술학 박사
2009년 가을 어느 날이다. 광주의 모 전통시장에 걸음 했을 때이다. 시장 안을 거닐다가 골목 어귀 작은 '생닭'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은 닭집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눈에 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벽면을 채울 만큼 큰 초상화는 마치 70~80년대 영화포스터 같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생뚱맞게도 시장에서 마주친 빛바랜 초상화가 하도 신기하여 가까이로 갔다가 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닭집 안쪽 벽면에 가득한 또 다른 그림들을 본 것이다. 얼핏 봐도 서툰 솜씨였다. 색채의 조화 뿐만 아니라 비례와 투시도법이 무시된 것으로 보아 전문가의 작품은 아닌 듯 했다.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그림 같은 순수함이었다. 그 그림을 그린 이는 바로 닭집 주인할머니였다.

결례를 무릅쓰고 할머니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할머니는 필자를 반겼다. 손님이 뜸할 때면 가게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할머니는 평생 닭집을 운영했는데, 늘그막에 시장에 입주한 작가들의 도움으로 화가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며 행복해 했다. 고인이 된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운 친구의 모습을 그릴 때면 잊고 지낸 아름다운 추억들이 되살아난다고도 했다. 그녀는 평범한 행복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그림들은 그렇게 모인 것들이다. 차츰 닭집은 전시장이 되었고 손님들은 기꺼이 관객이 되어주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상기된 표정으로 당신의 과거와 현재를 고백하던 닭집 할머니의 수줍은 미소가 지금도 생생하다.
닭집 할머니의 모습에 오버랩 되는 할머니가 또 한분 계시다. 바로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낸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 할머니이다. 그녀 역시 적지 않은 나이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76세에 시작해 101세까지 총 1천6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모지스는 80세에 개인전을 열었고 92세에 자서전을 출간했으며 93세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을 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두 할머니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순탄하지 않은 삶이었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꿈을 미루었다는 것이 그렇다. 두 할머니 모두 자신의 솔직한 마음에 반응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들의 그림에는 평범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인생의 연륜과 아픔, 따스함이 고루 녹아있다. 둘 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꿈을 실천하고 스스로 만족을 찾아 행복을 누렸다. 바로 필자에게 두 할머니들이 가르쳐준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다.
서영옥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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