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무산] 文대통령 "트럼프·김정은 진심 변하지 않았다"

입력 2018-05-26 00:05:16

충격의 청와대…극도의 '신중 모드'로 말 아끼기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0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8.5.25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0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8.5.25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25일 청와대는 당혹스러운 모습이 겉으로 보일 만큼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글자 그대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북미 정상회담 취소가 나온 탓이었다. 평소 출입기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온 청와대 참모들도 이날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청와대의 망연자실한 분위기를 희화화한 SNS 메시지가 이날 오전 퍼져나가기도 했다.

일단 청와대는 그동안의 '전진 모드'에서 타격을 크게 입었고, 한미 정상회담 직후 북미 회담 취소 발표가 나오면서 '한반도 운전자론'에도 큰 상처가 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어려운 상황을 통제하면서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에 재시동을 거는 분위기다. 하지만 종전과 달리 극도의 신중 모드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전날 밤늦게 참모들과 긴급회의를 가졌던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김용 세계은행(WB) 총재를 접견하는 등 공식 일정을 재개하면서 일단 냉정을 찾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진두지휘하며 불씨 살린다

문 대통령은 6·12 북미 정상회담 무산에도 불구, 북미 정상 간 대화를 촉구하면서 대화 동력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상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던 북미 정상 간 역사적인 만남에 일단 제동이 걸리자 당혹감과 깊은 유감을 표명했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하면서 당사국 정상들의 직접 대화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공식화한 전날 밤늦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들을 긴급 소집,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6·12 싱가포르 북미 회담이란 성과물을 도출했음에도 회담 성공의 가늠자인 비핵화를 둘러싼 구체적인 방법론을 놓고 진행됐던 '하위 단계' 논의의 한계성을 지적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협상 과정에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레드라인으로 보는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더러 생겨 결국 일이 틀어지게 됐다는 인식으로도 해석된다.

청와대는 "상황이 어려운 만큼 (북미) 두 정상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 긴밀하게 대화를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의제가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장을 찍는' 회담 당일에만 직접 소통할 게 아니라 더욱 높은 수준의 성과물을 담보하기 위해 협상 과정에서부터 직접 소통을 통해 장애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의중으로 보인다.

현재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려는 '수단'으로서는 물론 지금껏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소통방식에서도 '파격'이 절실하다는 현실론에 입각한 주문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 이유로 "북한의 최근 발언에 기초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종결하기로 했다"고 한 점은 이의 연장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한의 체제 보장을 지속해서 직접 언급했음에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미국을 맹비난하며 태도를 돌변한 게 회담 취소의 주요 사유였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이다.

◆낙심했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25일 메시지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6·12 회담이 취소되면서 단기적인 경색 국면은 불가피하겠지만 현 상황이 북미 간 전쟁도 불사할 것 같았던 이전 상황으로의 회귀나 근본적 구도의 변화가 아닌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판단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이 건설적 대화와 행동에 나설지와 언제 그렇게 할지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길을 따르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수십 년에 걸친 가난과 탄압을 끝낼 기회가 있다"고 했고, 이 소식을 접한 김 위원장도 김 제1부상에게 위임한 담화에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해 양측 모두 북미 회담의 문을 닫지 않았다. 양측 모두 판을 깰 생각은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특히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커다란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감'이라는 것은 사실 조미 수뇌 상봉을 앞두고 일방적인 핵 폐기를 압박해온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간의 대미 비난을 스스로 격하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것은 상황 타개에 대한 강한 의지로도 볼 여지가 있다.

문 대통령도 '판을 완전히 깨지는 않겠다'는 북미 정상의 공통된 메시지를 토대로 양측 간 접점의 영역을 넓히는 데 노력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북미 회담 취소 발표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라며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곧바로 재천명한 것도 북미 양 정상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중재역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라는 분석이다.

6·12 회담 전격 취소를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북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진통으로 보는 긍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상호 충분한 신뢰 쌓기 과정을 통해 합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 섞인 분석이다.

한편 청와대는 25일 오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현재 상황을 평가한 뒤 북미 정상 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상임위 위원들은 우리 정부가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노력이 북미 관계 개선 및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계기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