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가 된 아이들
한국 현대 여성소설의 원류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는 오정희의 장편소설이다. 열두 살 된 소녀가 화자로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데 어른의 시선으로 보는 어른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2003년 독일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독일 리베라투르상을 받았는데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첫 사례였다. 심리갈등 묘사에 뛰어나다는 저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이 간다는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경험이 동기가 되어 썼다고 밝히고 있다.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단단히 봉인된 방 같은 마음이라 문을 열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으며 참담함과 무책임하게 버려둔 듯한 부채감을 느낀다고 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남매가 겪는 고단한 일상과 같이 세 들어 사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동성애자 부부, 전신마비 딸을 둔 주인 할머니, 신분을 속이고 숨어 사는 살인자, 새를 키우는 화물기사 등…. 특히 옆방 화물기사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새와 새장은 매우 상징적으로 소설적 상황과 대응된다. 열 살 된 남동생 우일이는 잘 자라지도 않고 날이 갈수록 마르지만 늘 새처럼 날기를 꿈꾼다. 우일이가 아기였을 때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고 우일이를 3층에서 던졌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살아났다.
엄마의 부재에는 아버지의 폭력이 있었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돌보지 않는다. 부모나 어른들의 보호와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남매는 마음이 더욱 닫히고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소리 내지 않고 웃기. 소리 내지 않고 울기. 어떠한 경우에도 소리 내지 않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한 방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58쪽)
화자가 열두 살 소녀여서 복잡하고 어렵게 쓰진 않았는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담담한 어조가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느껴지고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으로 아픔이 먼저 와 닿는다. 아이들이 힘들다거나 슬프다는 표현은 없지만 어른들의 대화나 상황 묘사가 섬세하고 뛰어나 고통이나 슬픔이 더 깊게 느껴진다.
"그 애는 아마 날기 위해 가벼워지려 하는지도 모른다. 새는 뼛속까지 비어 있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애가 점점 더 말라서 대나무 피리처럼 소리를 낼 때쯤이면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90쪽)
우일이가 새가 되는 것은 죽음이다. 이 책에서 아이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희망도 없지만 저자는 새의 상징을 죽음으로 한정시키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안타까운 건 엄마도 분명 피해자인데 아주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엄마를 이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부분. 누군가 부르는 듯한 소리가 엄마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부르던 마음은 이제사 내게로 와 들리는가 보다."(165쪽)
문체가 섬세하고 정확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며 읽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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