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난민 소송 활성화를 바라며

입력 2018-06-20 10:25:31 수정 2018-06-20 19:31:40

남기정 대구고등법원 기획법관

남기정 대구고등법원 기획법관
남기정 대구고등법원 기획법관

대한민국에 난민법이 제정된 지 5년이 지났다. 이전에는 출입국관리법의 일부로 난민의 출입국 규정만을 두었으나 지난 2013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지 20년 만에 난민의 출입국뿐만 아니라 그 지위와 보장, 재정착 난민의 수용 등에 관한 규정이 마련된 것이다. 아시아 국가 중 진일보한 형태의 독립적 난민법을 최초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많은 관심이 모아졌고 이는 국제인권법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외국인을 말한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일정한 심사 절차를 통해 기초생활보장, 직업훈련, 자녀의 학교교육 등이 가능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기회에 도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따르면 난민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총 1천254건(올해 1월 기준)의 난민 지위 인정 신청이 있었으나 실제 난민으로 인정된 건 에티오피아(정치적 사유)인 3명(0.2%)이 전부였다. 전국적으로도 총 3만4천여 명이 난민 지위를 신청한 가운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는 794명(2.3%)에 불과하다. 대구의 경우 신청 사유로는 정치적 사유가 359건으로 가장 많았고 종교가 337건, 특정 구성원 90건, 인종 80건, 내전 53건 순이었다. 난민 인정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신청인은 정부의 난민 불인정 결정 자체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데, 사실상 이것이 신청인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이자 유일한 사법적 구제수단이다. 현재 대구법원에도 140여 건의 사건이 계류 중이다. 문제는 난민신청인들은 막막한 생계와 언어장벽, 문화장벽 등 사회에서의 입지가 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법률지식이 전무한 신청인이 스스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법부는 법원이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재판에 필요한 비용(인지대, 변호사 보수, 송달료, 증인여비, 감정료 기타 재판 비용)의 납입을 유예 또는 면제하는 '소송구조제도'를 장려해왔으나 난민 사건에 대한 소송구조 신청 대비 인용비율은 최근 2년간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난민 관련 소송구조 예산 집행이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 등 실질적 활용이 순탄하지 않은 실정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사법부는 소송구조 변호사의 기본보수액도 종전 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증액하고 난민 소송을 위한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는 등 현실적인 보완책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또한 과거 신청인이 부담해야했던 통번역료에 대해서도 법원이 직권으로 소송구조결정을 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신청인의 실질적인 부담은 대폭 완화될 전망이다. 대구법원 또한 이런 변화에 발맞춰 올해 난민 사건에 대해서는 직권소송구조결정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상의 개선책은 사법적 구제수단에 대한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사법절차에 난민 신청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개선책이 마련된 만큼, 널리 알려지고 충분히 활용되어 그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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