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공공조형물 조례 보완 시급하다

입력 2018-05-18 00:05:04 수정 2018-05-26 22:40:36

매일신문사 앞 도로를 건널 때마다 붉은색 아크릴로 만들어진 조형물을 보며 괜한 의구심을 품게 된다. 과연 이 작품은 무슨 의미를 담았을까? 가뜩이나 무더운 대구에서 굳이 쇠로 커다란 바닥판을 만들어 열기를 더욱 가중시키는 부작용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일까?

작품성과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공공조형물 가운데 365일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에 노출돼야 하는 작품이 다수 있다. 대구콘서트하우스 마당에 설치된 조형물이 그렇다. 처음 설치됐을 때는 깔끔한 검은색 바탕에 선명한 붉은색 라인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색이 바래면서 영 볼품없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도시도 브랜드 경쟁시대가 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홍보를 위한 각종 조형물 설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시의 명물을 시각적으로 손쉽게 알리고, 관광명소화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예술의 향기를 입히는 것이다. 덕분에 어딜 가나 볼거리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조형물 설치 과정에서 제대로 된 논의나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곳도 상당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구 달서구청이 진천동 선사시대로에 설치한 초대형 원시인 조형물이다. 이 작품은 올 초부터 '흉물' 논란이 일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이 철거 시위를 벌였고 결국 이달 초 달서구의회가 원시인 조형물 철거를 요구한 주민청원을 받아들였다. 이 작품에는 2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서울의 슈즈트리 역시 흉물 논란으로 자취를 감췄다. 1억4천만원의 예산이 사용된 이 작품은 헌 신발을 활용해 '도시 재생'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았지만, "악취 나는 신발 폭포"라는 시민들의 악평이 쏟아지면서 철거됐다.

사실 이런 공공조형물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지난 2014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지자체의 무분별한 공공조형물 건립에 제동을 걸기 위해 조례안을 권고했다. 물론 이를 받아들인 많은 지자체들이 앞다퉈 관련 조례 제정에 나섰지만, 국민권익위가 제시한 표준안을 준용해 만든 조례는 심각한 허점을 안고 있었다. 가장 많은 공공조형물을 발주하는 주체가 지자체이지만 정작 문제의 주범(?)인 지자체는 심의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이번 '원시인 조형물' 사태에 있어서도 달서구는 "해당 조례는 외부인이 조형물을 설치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지자체가 직접 설치할 경우에는 공공입찰 관련 조례의 심사 절차를 밟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국민권익위는 "지자체도 심의를 받아야 하는 주체라고 명확히 표현하지 않아 달서구가 스스로를 심의 대상에서 뺄 수 있는 허점이 있어 개정을 권한다"고 달서구청에 밝혔다. 지자체 역시 심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국민권익위가 다시 한 번 분명히 지적한 것이다.

예술 작품을 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흉물'로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참신한 '작품'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공조형물이 시민들의 혈세가 투입되고 불특정 다수가 감상하게 되는 만큼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고 심의하는 '논의의 장'이 분명히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지자체장이나 담당 공무원의 의견만으로 결정될 사안은 아니다.

원시인 조형물 논란도 당초 달서구청이 형식적인 공청회 대신 주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거나,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사전 심의를 거쳤다면 어땠을까? 더 이상 공공조형물 논란으로 혈세와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는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공공조형물 관련 조례의 개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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